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올해엔 좀 새로워져야겠다

권영상 2024. 1. 5. 18:04

 

올해엔 좀 새로워져야겠다

권영상

 

 

 

올해는 내가 좀 달라져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직장을 마치고 나온지 오래됐다. 직장이 없다는 생각 때문인지 옷은 직장에 다닐 때 입던 것들을 이것저것 가려 입는다. 뭐 특별히 사람 앞에 나설 일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직장 다닐 때 입던 옷이라고 새로 사는 옷보다 못하지 않다. 멀쩡하다. 오히려 그 무렵의 옷들이 요즘 옷보다 더 탄탄하고, 품격 있다.

 

 

나는 그런 구실을 대며 오랫동안 지난 시절의 옷을 입고 살았다. 그러면서도 어쩌다 새 옷을 사 입으면 기분이 다르다. 전화를 걸어 누군가를 만나고 싶고. 그와 멋진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거나 점심이라도 함께하고 싶다. 그를 만나면 나는 싱겁게 자꾸 웃을 테고, 별일 없으면서도 사람들 붐비는 곳을 찾아가 어깨에 힘을 넣고 걸을 테다.

 

 

새로 산 외투에, 멋진 목도리를 하고, 챙이 알맞은 감청색 모자를 쓰고 집 근처에 있는 미술관에 열흘 한 번씩 그림을 감상하러 가고 싶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미술관에 가면 입장료 없이 볼 수 있는 상설작품이나 아트숍에 들러 아이쇼핑이나 했다. 올해는 한 달에 한 번씩은 입장료를 내고 현대미술가들의 작품을 감상하고 싶다. 아이쇼핑도 즐겁지만 작은 그림엽서라도 몇장씩 사서 멀리 있는 벗들에게 편지를 써 보내고 싶다.

 

 

올해는 낯선 책을 좀 읽어 시야를 넓혀야겠다.

내가 모르는 외국의 젊은 화가나 음악가, 내가 모르는 천문학자나 해양 전문가, 또는 나와는 전혀 동떨어진 분야에서 글을 쓰는 분들의 책을 읽고 싶다. 고만고만한 세계에 살면서 내가 아는 고만고만한 지식으로 아는 척하는 내게서 벗어나고 싶다. 실상 알고 보면 세상은 내가 아는 것보다 어마어마하게 넓은데, 나는 좁은 우물에서 오랫동안 맴돌았다.

 

 

그동안 내가 벼르고 별러 온 것이 있다.

손수 차를 몰고 낯선 데를 다녀보고 싶다. 시간을 좀 넉넉히 내어 서해와 오래 만날 수 있는 고군산열도나 압해도쯤에 가 시간이 허락하는 데까지 머물러 그쪽 바다와 일몰에 흠뻑 젖었다 돌아오고 싶다.

나는 어리석어 낯선 땅에 대한 두려움이 많다. 차를 몰아 기껏 여행을 떠난다 해도 아는 곳을 선택한다. 나는 내가 아는 길에서 벗어나는 걸 두려워한다. 버스나 동료들의 차에 동승하여 여행을 한 후, 정말 한 번 더 가보고 싶다 하면서도 다시 찾지 못하는 이유는 낯선 땅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새해에는 나와 약속하건대 좀 달라져야 할 일이 있다.

안성에 있는 텃밭을 돌보러 가는 길을 바꾸어보는 일이다. 나는 오랫동안 늘 가던 그 길,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양지 요금소에서 백암으로 가는 길을 고집했다. 그러나 올해는 좀 돌더라도,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일반국도를 다니며 좀 느긋해지는 법을 배워야겠다.

가다가 마음에 드는 마을이 있으면 들르고, 가다가 마음에 드는 숲길이 있으면 쉬었다 가고, 가다가 작은 박물관이 있으면 들러 소박한 박물을 들여다보는, 내가 여태껏 소홀히 대했던 세상에 눈길을 보내고 싶다.

 

 

나는 오랫동안 하나의 직업을 가지고 살았고, 그러느라 다른 세상에 대해 별반 아는 게 없다. 그런 까닭에 세상과 두루 친숙하지 못하다. 그저 편하고, 내가 아는 것에 자족하며 살았다. 올해는 그런, 내가 늘 다니던 길을 좀 바꾸고 싶다. 이제 와 뭘 하겠다고! 얼마나 달라지겠다고! 하는 그런 생각을 버리고 늦더라도 나를 새롭게 하고 싶다.

 

<교차로신문> 2024년 1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