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토끼띠 해의 운세

권영상 2023. 1. 5. 17:11

 

토끼띠 해의 운세

권영상

 

 

“그대 토선생이 아니신가. 오늘에야 산중호걸을 만났도다!”

자라는 토끼를 보자, 수중 궁궐의 호의호식을 장담하며 그럴싸한 말로 토끼를 유인한다. 이 에 토끼가 망설이매 너구리가 ‘분수를 지키면 몸에 욕이 없다’며 만류하지만 토끼는 부귀와 공명이라는 말에 속아 자라의 등을 타고 수궁으로 떠난다.

고전소설 ‘토끼전’에서 토끼가 위험한 험지로 떠나는 장면입니다.

 

 

올해가 토끼띠 해네요.

그래서 그런지 운세 여기저기에 ‘토끼전’의 토끼의 성품이 배어들어 있네요. 이를테면 ‘어떤 계획을 세우든지 급하게 진행하지 마라.’, ‘조급한 마음으로 서두른다면 잃는 게 많다.’, ‘즉흥적 결정을 피하고 지혜롭게 처신하라.’, ‘지나친 욕심을 내지 마라.’, ‘휴식을 취하여 에너지를 비축하라.’ 등등입니다.

재미난 것은 토끼를 약한 체질의 동물로 보아선지 휴식을 취하기 바란다거나 힘을 비축하여 멀리 도약하라는 말도 자주 등장합니다.

 

 

사람의 운세를 토끼의 성질에 황당하게 꿰어 맞추는 것 같아 읽으면서 몇 번이나 웃었습니다. 그러나 또 어찌보면 나름대로 우리 선조들의 정겨운 지혜가 엿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태어날 때 12지 중의 한 동물을 받아 나오지요. 그게 띠입니다. 지금도 그 띠를 숭상하는지 모르겠지만 예전 우리들은 그 띠라는 걸 중히 여겼습니다. 소띠라면 뚜벅뚜벅 걸어가는 소의 우직함을, 원숭이띠라면 원숭이의 뛰어난 재능을, 용띠라면 하늘로 승천하는 용의 에너지를 본받아 그렇게 살려고 노력했지요. 어떻든 띠는 그 동물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은유였지요.

 

 

그러나 띠가 범하는 우도 있지요.

한 동물의 품성에 기대는 편향적 성향입니다. 다른 동물들이 가지고 있는 덕목을 배우지 못한다는 점이지요. 아마 그걸 보완하기 위해 해마다 12지를 돌려가며 열두 동물이 지닌 덕목과 품성을 두루두루 본받게 하는 듯싶습니다. 그 점에서 12지를 띠로 삼거나 해로 삼는 풍습은 완성된 인격을 지향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조선 시대 선비들에게 있어 12지 동물이란 선비가 따라 배울 대상이 못 되었지요. 성리학은 동물을 하등한 존재로 보았으니까요. 그런 만큼 조선의 상류 계층은 하층의 백성들과는 달리 주로 물, 바위, 소나무, 대나무, 달, 산 등과 같은 자연물을 자기완성에 이르는 벗으로 삼았지요.어떻든 인간과 함께 하는 주변의 동물이나 자연물에서 소박하나마 그들의 생의 근성을 덕목화하여 자신을 성숙시키는 대상으로 삼았다는 건 매우 자연친화적 발상입니다. 또한 같은 띠끼리 연대감을 갖게 하여 결속하는 효과도 가지고 있습니다.

 

 

토끼가 조급하고 꾀가 많고 허약한 체질을 가졌다는 말을 부인할 생각은 없습니다. 토끼뿐만 아니라 사람도 그러하니까요. 건강한 사람이든 아니든 그 사람의 내면에는 한 가지씩 허약함이 다 있는 법이지요. 그런 까닭에 ‘휴식을 가지라’는 말은 허술한 조언이 아니지요. 지혜로운 사람마저도 때로는 가볍게 판단하는 실수를 저지를 때가 있지요. 그러니 그 유혹에 빠지지 말라는 풀이도 새겨들을만한 일입니다.

 

 

동물의 성질을 빌어 사람이 살아가는 삶의 경계로 삼는 우화적인 발상은 설득력이 있습니다. 세상을 해석하는 힘은 지극히 사람 중심적이며 좁게는 자기중심적입니다. 토끼가 조급하여 자라 등에 올라타는 실수를 범하였듯 나름대로 신중한 생각과 비축한 에너지로 자기완성의 꿈을 이루는 게 올해의 좋은 운세가 아닐까 합니다.

 

<교차로신문>2023년 1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