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내게도 반려 작물이 있다

권영상 2023. 1. 11. 15:39

 

내게도 반려 작물이 있다

권영상

 

 

 

“반려 식물 샀어.”

바깥일을 보고 돌아오는 아내의 손에 화분 두 개가 들려있다.

동네 가게에서 샀다는데 하나는 여우꼬리선인장이고, 하나는 콩난이라 했다.

나는 단번에 아내가 내려놓은 이 반려 식물이라는 것에 호기심이 갔다.  예쁘기도 하거니와 이름조차 마음에 쏙 들었다. 여우꼬리니 콩난이니 하며 이름을 부를 때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들이 태어나 살던 곳을 즐겁게 상상하게 된다.

콩난은 잎도 줄기도 없다. 끈으로 구슬을 꿰어놓은 듯 작고 앙증맞은 식물이다. 여우꼬리선인장은 햇빛을 충분히 받으면 가시가 여우 꼬리털처럼 황금빛으로 변한단다. 아내는 그걸 햇빛 가득한 앞 베란다 빨래건조기 위에 올려놓았다.

 

 

반려 동물이란 말은 들어봤어도 반려 식물이란 말은 처음이다. 웬걸! 반려 식물만이 아니다. 반려 그림도 있고, 반려 책도 있다. 반려 음식이며, 반려 운동, 반려 취미도 있다. 물론 반려 만년필도 있을 수 있다. 서로 마음으로 교류하고, 대화하고, 도움과 치유와 정서적 안정을 얻을 수 있다면 그 모두 반려의 대상이 되는 모양이다.

AI로봇을 노후의 돌보미와 대화상대로, 종국에는 로봇과 사랑의 감정까지 주고받는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을 보면서 로봇도 반려자가 될 수 있겠다 했지만 반려 식물이라니!

 

 

그러고 보니 내게도 반려 작물이 있다.

감자다. 농사를 지으시던 아버지 곁을 떠나 서울에 올라와 산지 벌써 40년이 지났다. 흙 한 줌 밟을 데 없는 도시를 살아내던 20년 전의 일이다. 아내의 친구가 청계산 기슭에 주말농장을 소개해 줬다. 5평정도 될까. 거기에 고추며 상추 감자를 10여 년 동안 심고 가꾸고 캐다가 급기야는 직장을 그만 두고 서울에서 먼 안성에 시골집을 지었다.

생땅을 일구어 내가 제일 먼저 심은 작물이 감자다. 그 후 나는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감자를 심었으니 감자는 무려 나와 20년을 함께 했다.

 

 

밥벌이 하랴 글 쓰랴 나름대로 바빴던 내가 하필이면 다른 것도 아닌 재래작물 감자를 심어 가꾸다니! 나는 그 까닭을 몇 년 전에야 알았다. 내가 심어 가꾸는 감자가 단지 감자가 아닌 아버지였다는 것을. 더 바르게 말해 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잊지 않기 위해 해마다 봄이면 감자 이랑에 감자를 심어왔다는 것을 알았다.

그 일을 위해 해마다 3월이면 고향으로 달려가 감자씨를 구하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그날을 감자 심는 날로 삼았다. 아버지는 감자를 심으시고 봄눈이 내리던 날 홀연히 떠나가셨다.

 

 

감자꽃이 필 때 감자 밭둑에 앉아 담배를 피시던 아버지에겐 십여 명의 아버지가 거느려야 하는 식솔이 있었다. 그때 어머니는 16년의 길고 긴 투병을 하셨고, 나는 고교 진학을 못했다. 그 무렵 아버지는 외로우면 감자밭 김을 매시면서 햇볕에 몸을 태우셨다.

내가 감자를 해마다 심는 건 그때 그 아버지를 느끼기 위해서다. 그래서인지 감자밭에 나가서면 그 옛날 아버지의 고충을 떠올리며 외로우신 아버지를 위로하게 된다.

 

 

이 나이에 이 세상에 안 계시는 아버지를 위로하는 일.

그게 나를 위로하는 것이며 나를 치유하는 것이었다.

그 까닭에 1시간을 달려와 혼자 며칠 밤을 묵어도 아버지와 함께 있는 듯 외롭지 않다. 돌이켜 보면 1년 중 가장 행복한 날은 감자씨를 넣고, 감자꽃을 보고, 감자를 캐는 그 넉 달이다.

이쯤이면 감자가 나의 반려 작물이 되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교차로신문> 2023년 1월 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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