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엔 시간 부자가 되시기를
권영상
책상 위에 모래시계가 있다.
그것은 언제나 내가 쓸 만큼의 시간을 담고 있다. 늘 애용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정지한 채 책상 위에 머물게 한다. 그의 시간은 시계처럼 막무가내로 나를 이끌고 가지 않는다. 내가 요구할 때 요구한 만큼 흘러가다 때가 되면 멈춘다.
모래시계가 내게로 온 건 몇 년 된다.
그때 나는 오래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었다. 갑자기 직장이 없어지자, 주체할 수 없이 많은 시간이 밀려왔다. 시간의 홍수 속에서 나는 허우적거렸다. 책을 읽건 놀건 컴 앞에 앉건 한번 시작하면 시간의 늪에 빠져들어 끼니를 잊거나 삽시에 일몰을 맞고는 했다.
그러면서도 뭐가 그리 바쁜지 요의가 느껴지면 내 방에서 화장실까지 불과 몇 미터를 달려가고 달려왔다. 시간은 풍족한데 백수인 나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이러다 필시 건강에 문제가 생길 것 같았다.
‘잠깐 잠깐 쉬려면 시간을 알려주는 알람이 필요해.’
나는 컴에서 선택한 알람을 휴대폰에 다운받았다.
알람은 퍽 재미있었다. 12시가 되면 어린 소녀가 나와 ‘12시!’하고 외쳤다. 그녀는 일에 골몰하는 내게 시간마다 ‘한 시!’, ‘두 시!’ 하며 나를 자리에서 일으켜 세웠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일어나 1, 2분 허둥지둥 운동이랍시고 몸을 풀었다.
그 무렵이다. 어느 문학상 시상식에 참여해 수상자의 수상 소감을 듣고 있을 때다. 불시에 내 주머니에서 ‘세 시!’, 하며 소리치는 소녀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조용하던 시상식 자리가 갑자기 어이없는 웃음바다로 변했다.
그 후, 나는 휴대폰에서 알람을 제거했다.
직장이 통제하는 대로 살아온 나의 시간관념은 한 동안 무질서했다. 직장에 다닐 때는 점심시간도 있었고, 담소를 나누는 시간도 있었고, 식후엔 짬을 내어 공원을 걷는 시간도 있었다. 그런데 그 시간들이 다 사라졌다.
시계가 없어서인가. 아니다. 거실, 주방, 욕실, 현관이며 책상, 휴대폰 속에도 시계는 있었다. 그러나 그 안에 들어있는 시간은 너무도 연속적이어서 내가 붙잡을 수도 외면할 수도 없이 고집스럽게 한 방향으로 달려가는 시간이었다.
그때 내가 떠올린 게 모래시계다.
나는 1시간으로 세팅된 모래시계를 구입해 내 책상 위에 두었다. 일을 시작할 때면 모래시계를 뒤집었다. 천천히 모래가 내려오는 걸 보고 나는 일을 시작했고, 어느 만큼의 시간 뒤에 보면 쏟아져내리는 시간이 쌓이고 있거나 끝나 있었다.
모래시계가 좋은 건 끝이 있다는 점이다.
내가 필요한 시간만큼 쓰고 나면 더 이상 아래로 내려갈 모래가 없다. 나의 시간은 거기서 완전하게 끝난다. 나는 기분 좋게 자리에서 일어나 자유롭게 몸을 푼다. 끝없이 달려가는 시간 열차에서 문득 내려선 기분이 이렇겠다.
모래시계가 좋은 건 그 말고 또 있다. 꺼내어 쓸 시간이 많다는 점이다. 쌓여있는 모래를 보면 내가 시간부자가 된 듯하다. ‘한 시!’, ‘두 시!’, ‘세 시!’ 를 다그치는 그런 시간이 아니라 꼭 필요한 나의 시간을 누군가의 간섭 없이 언제든 쓸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며칠 뒤면 새해다. 새해엔 ‘시간 없다’며 허둥대기보다 모두들 ‘시간 부자’가 되는 그런 한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교차로신문> 2022년 12월 2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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