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스스로 빛을 만드는 모과

권영상 2022. 12. 17. 12:16

 

스스로 빛을 만드는 모과

권영상

 

 

오늘도 눈 내린다는 예보가 있다.

올 들어 벌써 여러 차례 눈이 내린다. 건너편 산도 희끗희끗 겨울의 흔적이 역력하다.

그런데 딱 한 곳, 아직도 겨울의 이쪽에 머물러 있는 곳이 있다. 내가 사는 아파트 마당이다. 아파트가 넓은 미음자 형이라 그런지 그 안쪽은 아직 가을이다. 특히 모과나무 네 그루가 그렇다. 그들은 자유롭게 자란, 5층 높이의 거대한 나무들이다. 순조로웠던 지난 계절의 날씨 탓이었을까.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모과가 주렁주렁 달려 있다.

 

 

아파트가 바람을 막아주고 또 햇빛을 모아주어 그런 모양이다. 붉은 빛이 은은하게 도는 녹색 나뭇잎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녹색 숲과 노랑 빛깔 모과들이 보색처럼 서로 빛난다. 등불을 내다건 듯 모과가 달려 있는 풍경은 경이롭다. 영화 ‘와호장룡’의 무림의 고수들이 녹색의 대나무를 타고 싸우던 모습을 불현 떠오르게 한다. 그들은 학처럼 대나무 숲 위를 날며 이 세상과는 다른 자유로운 경지의 대결을 그려낸다.

 

 

모과들 역시 그러하다. 겨울 앞에서도 전혀 겨울을 느끼지 않는다. 여러 계절을 건너오면서 이제는 계절의 경계 쯤은 잊어버린 듯 초연하다. 치렁치렁 늘어진 나뭇가지 끝에서 태연히 노니는 저 노랑 빛들. 바람이 불면 선연한 바람의 날을 피하듯 몸을 일으켰다가 낮추었다가 슬쩍 가슴을 젖혔다가 숙였다가 가벼이 뛰어오르다가 또 때로는 녹색 잎새 뒤에 깜물 숨어들기도 한다. 바람을 맞이하는 그들의 조용한 일렁임의 자세는 경이롭다 .

 

 

보안등이 붉게 켜지고 날이 저물어 가는 시간에 보는 그 일렁임이란 마치 도학의 경지를 보는 듯하다. 아직 녹지 않은 눈이 뜰마당에 하얗게 깔려 있는데 샛노란 빛으로 춤추는 모습은 고수가 꿈꾸는 생의 완성 같다. 힘들여 살던 지상에서 어느 날, 자유를 얻어 세속을 벗어나는 도학이 저렇겠다.

나는 마음이 답답할 때면 자신의 빛깔을 태연히 뿜는 모과들을 바라본다. 감나무 끝에 매달린 감들이 겨울이 깊어갈수록 더욱 투명하게 붉어가듯 모과 역시 겨울 쪽으로 시간이 가면 갈수록 노랑 빛이 더욱 선연하다.

 

 

모과의 노랑 빛은 모과나무가 스스로 만든 빛이다.

지난봄과 여름과 가을 내내 햇살과 바람과 비와 함께 그 누구도 범접하기 어려운 빛을 만들어냈다. 나무들은 대개 저마다의 고유한 빛을 만든다. 모과나무 또한 그렇다. 지혜로운 빛나무다. 모과나무는 평소에 꿈꾸던 그 노랑 빛을 스스로 만들어 사위에 뿜는다.

 

 

점심에 마당에 나갔다가 아파트를 돌보는 분을 만났다.

그분이 비닐봉지 속에서 모과 한 덩이를 꺼내어 내밀었다.

“바람에 떨어진 건데 드릴까요.”

나는 그 노란 빛덩이를 두 손으로 넙죽 받았다. 그분은 다시 한 덩이를 또 내밀었다. 그걸 거실에 들여다 놓았는데 떨어지느라 생긴 상처 때문인지 향기가 깊다.

 

 

이제 바깥에 눈 내리고, 그 눈 녹고, 또 추위가 몰려오면 올 한 해도 끝나고 말겠다. 한 해는 그렇게 지나가고 말겠지만 나는 한 해를 어떤 빛깔로 살아왔나, 그 생각을 한다.

모과나무가 스스로 빛을 만들어 추위 앞에서 유유자적하듯 나는 어떤 빛깔로 나를 지키고, 그 빛깔에 나의 모두를 걸며 살아왔는지……. 무덤덤한 나를 벗어던지고 싶다. 추우면 추울수록 오히려 선명해지는 모과들의 높은 이념이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