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토끼처럼 깡총 뛰는 토끼해

권영상 2022. 12. 30. 15:41

 

토끼처럼 깡총 뛰는 토끼해

권영상

 

 

딸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입니다.

교문 앞에서 샀다며 하얀 아기 토끼를 안고 왔습니다. 정말 너무 예뻤습니다. 우리는 딸아이가 안고 온 아기토끼를 돌아가며 한 번씩 안아보며 어린 동물이 내뿜는 특유의 귀여움에 푹 빠졌댔습니다.

우리는 그 날로 아기 토끼 이름을 지어주었지요.

하루! 하루의 소중함을 생각하며 하루라고 지었지요. 그 다음에 한 일은 집을 만들어주는 일이었지요. 그리고 마트로 달려가 유기농 채소와 과일을 사와 사료 대신 먹이로 썼지요. 잘게 썰어준 홍당무를 오물오물 먹는 입이란 정말 예뻤지요. 아무리 목석같은 사람도 갓 낳은 동물의 새끼에 빠지지 않을 수 없지요.

 

 

아침이 되면 우리 식구는 하루 앞에 모였지요.

양치질을 하면서, 넥타이를 매면서, 딸아이는 또 딸아이대로 입에 밥 한 숟갈 떠 넣으면서, 바지를 꿰면서 ‘하루야, 안녕’, ‘안녕!’ 몇 번이고 인사를 하며 집을 나섰지요.

하루는 귀엽기도 했지만 붙임성도 좋았지요.

퇴근하면 나는 쉴 겸 거실에 누워 하루를 팔베개 해주곤 했지요. ‘하루야, 팔베개!’ 하면 내게로 깡총깡총 뛰어와 내 팔에 안겼지요. 딸아이도 누워 ‘하루야!’ 하고 팔을 뻗으면 하루는 내게 했던 것처럼 깡총 달려가 폭 안겼지요.

 

 

그러던 어느 날 부터입니다.

거실에 누워 ‘하루야!’ 하고 팔을 뻗으면 하루는 제 키보다 높은 허공을 깡총 뛰어올라서는 내 팔 위에 툭 떨어지며 누웠지요. 그때 내 팔이 느끼던 하루의 아름다운 목숨의 무게를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처음 딸아이는 아기토끼를 보살펴주려고 하루를 사왔지만 그 반대가 됐습니다. 하루랑 놀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우리가 하루로부터 위로받는 형국이 되었지요.

 

 

집에서 그리 멀지않은 구청 옆에는 쉬기에 좋은 넓은 풀밭이 있었지요. 거길 가겠다고 자전거를 샀는데 실은 잘 가게 되지 않았지요. 근데 우리를 데리고 간 건 하루였지요. 거기 가면 하루가 맛있게 먹을 풀이 있잖아, 하는 딸아이 말에 나는 대뜸 자전거에 딸아이와 하루를 태우고 구청 옆 풀밭을 향해 달렸지요.

푸른 바랭이와 토끼풀과 엉겅퀴와 능쟁이, 드문드문 무들과 들꽃과 옥수숫대가 있는 풀밭. 하루는 이 놀라운 풍경이 마음에 들었겠지요. 언젠가 보니 팔베개 할 때 그랬던 것처럼 풀밭 나무의자에 깡총 뛰어올라갔습니다. 하루는 깡총 뛰는 걸 좋아했던 거지요. 그 후 하루는 거실 소파에도 깡총, 식탁 의자에도 깡총 뛰어 올랐습니다.

 

 

하루는 무럭무럭 자랐지요. 근데 아파트에서 사람과 함께 사는 일에 그만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의 오줌에서 나는 독한 지린내 때문입니다. 온가족이 상의한 끝에 안 됐지만 산속으로 하루를 보내주기로 했습니다. 그때는 그것 외에 별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나는 딸아이와 함께 하루를 데리고 집을 나섰습니다. 청계산 주말농장 근처 햇빛 좋은 산언덕으로 올라갔습니다. 거기 칡덩굴 아래에 작별인사를 하며 놓아주었습니다. 하루는 우리 마음과 달리 칡덩굴 속으로 깡총 뛰어 들어갔고, 딸아이는 한결 어른스러워진 마음으로 울음을 참으며 돌아왔지요.

하루는 갔지만 토끼띠 해는 또 이렇게 오네요. 토끼처럼 낮지만 높은 데를 깡총! 뛰어오르는 도약하는 한해가 되시기 바랍니다.

 

<교차로신문>2023년 1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