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아픈 가을

권영상 2022. 11. 2. 20:03

 

아픈 가을

권영상

 

가을이 깊어간다.

오솔길 느티나무 숲이 온통 노랗다. 가을이 도심 속으로 깊숙이 들어왔다. 바람이 불지 않는데도 느팃잎이 떨어진다. 빙그르르 돌면서, 나풀거리면서 곤두박질치듯 떨어져 내린다. 소리 없을 뿐이지 떨어지는 낙엽들도 생애의 마지막 아픔을 안다.

떨어지는 건 때로 아름답다. 하지만 때로 비애에 젖어들게 한다. 가을 여행을 사랑하는 이들도 있지만, 외로운 조락에 눈길을 돌리는 이들도 있다. 가을의 한가운데서 우리는 이태원 참사를 맞았다. 조락의 아픔이 더 없이 크다.

 

 

그날 오후, 나는 이태원 입구 한강진역 근처에 있었다. 4시쯤 ‘엘리자벳’을 보고 나오며, 이태원에 잠깐 들러보고 갈까, 그런 생각이 없잖아 있었다. 나는 체격 때문에 가끔 이태원 상가에서 운동화나 구두, 아니면 등산화, 장갑, 점퍼를 사곤 했다. 그날도 한가한 가을 여유가 있어 이태원 쪽에서 물들어오는 가을볕을 바라보다가 그만 돌아섰다.

그 날 밤, 12시 무렵에야 잠 들었는데 이튿날 아침에 할로윈데이의 참사 소식을 접했다. 아까운 10대 20대들을 잃었다는 충격에 피가 멎는 듯 아찔했다. 그 날 그 근처에 있었다는 일과 이태원으로 들어갈까 말까 했던 그 망설임의 시간이 몸서리쳐졌다.

 

 

그때 나도 한창 어렸다면, 절친이 있어 sns로 ‘이태원으로 모이자!’ 는 메시지를 받았다면, 망설임 없이 달려갔을 거다. 나는 누구보다 나를 잘 안다. 사람들의 물결 속에 밀려들어 함께 호흡하고, 함께 밀리고 밀리는 시간을 좋아한다. 나는 쉽게 쏠리고, 쉽게 흥분한다. 서로의 심장소리를 듣고, 뜨거운 젊음의 열기를 느끼고, 그런 분위기에 감동하여 노래 부르고, 어쩌면 선창을 하거나 떼창을 유도했을지 모른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옆사람이 다쳐 소방대원의 응급조치를 받는 걸 본다고 해도 그 곁에서 춤추고 노래했을 거다. 그런 그들을 나는 나무라지 않는다. 그들이 내 모습이기 때문이다. 클럽에서 템포가 빠르고, 격정적인 음악이 빵빵하게 쏟아져 나오는 데 못들은 척 냉정해질 수 있을까. 어른들이 말하는 것처럼 흥분된 감정을 아예 없었던 것처럼 가라앉힐 수 있을까. 소방대원에 의해 응급조치가 이루어지고 있으니, 그 일은 또 잘 해결 될 테다. 그런 생각이 한 순간 들었다면 나는 수많은 인파의 열기와 뜨거운 음악을 외면하지 못하고 춤 추었을 거다.

 

 

마스크로부터 해방되지 않았는가.

누군가 이동하지 못하는 인파를 향해 밀어!를 외친다면 나도 거기에 합세했을지 모르겠다. 인파의 안쪽이 위험한 상황이라는 걸 모르는 이상, 그런 장난 같은 일에 성큼 끼어들지 않았을 거라고 나는 나를 장담 못하겠다. 그게 나니까.

어른들이 말하는, 남의 나라 할로윈 축제에 왜 몰려가느냐, 정신없는 애들 아니냐! 하지만 나 역시 젊었다면 정신없는 애들일시 분명하다. 우리나라 축제는 대부분 어른들을 위한 축제다. 숱한 꽃 축제와 보리밭 축제는 젊은이들의 것이 아니다. 컴 앞에 앉아 견뎌내는 비대면 공부라는 게 얼마나 힘든 줄 어른들은 알까. 뛰어라 하고 뛰어도 안 되는 취업은 뭐 또 안 그런가. 민다면 어리석게도 그게 암울한 벽이라 생각하고 나도 밀었을 거다.

 

 

암만 다르다 해도 그들의 모습이 나의 모습이다. 제발 ‘주범’이라는 이를 붙잡아 놓고 그를 향한 분노의 '잔치'를 벌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본디 우리가 좀 쉽게 한 곳으로 쏠리고, 좀 쉽게 한 곳을 향해 흥분하지 않던가. 그것부터 고쳐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교차로신문> 2022년 11월 1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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