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을 따다
권영상
“감 따러 갑시다.”
아침 설거지를 끝내자, 아내가 커다란 바구니를 집어 들었다.
나도 하던 일을 놓고 장대가 아니라 전지가위를 집어 들었다. 뜰마당 감나무에 감이 익은지 오래다. 감은 서리가 내리기 전부터 붉었지만 따는 걸 미루어왔다.
아내는 후딱 따는 것보다 오래 두고 보자, 주의였다. 그 말에 나도 동감이다. 감나무의 멋은 감잎 떨어진 뒤 가지마다 붉은 감이 매달려 있는 풍경이다. 우리가 처음 감나무를 심은 것도 감이 열린 늦가을 풍경이 그리워서였다.
나는 바구니를 든 아내와 문을 열고 나섰다.
감은 정확히는 단감이다. 심은 지 4년 됐다. 8년 전, 나는 매실나무와 모과나무를 심었고, 그 이듬해에 대추나무를 심었다. 그러니까 감나무는 그 썩 뒤에 심은 편이다. 늦은 가을 긴 장대를 들고 감나무를 오르내리던 추억이 내게 있다. 밤새워 감을 깎고, 그걸로 곶감을 만들던 기억은 감나무가 많은 외가에서 경험했다.
추억이 깃든 감나무 심기가 늦었던 건 지금 내가 사는 이곳이 내륙이고, 기온이 서울이나 해안 보다 턱없이 낮기 때문이다. 그러나 등잔 밑이 어둡다고 마을로 들어오는 길갓집 뒤란에 대봉시가 주렁주렁 달린 걸 본 건 꼭 4년 전이다.
그 해 겨울을 간신히 넘기고 이듬해 3월, 양재동 나무시장에 달려가 대봉시나무를 찾았다. 주인을 만나 다들 떠나갔는지 나이든 대봉시나무는 없고 어린 묘목만 남았다. 마음이 성급한 나는 냉해에 조금 약하다는 말을 듣고도 7년생 단감나무를 성큼 샀다.
“3년 뒤면 감을 딸 수 있을 거요.”
늙수그레한 나무장수의 말을 위안 삼으며 돌아와 나무를 심었다.
동해에 약하다는 말이 무색하게 감나무는 이태 동안 무럭무럭 자랐다. 감잎이 활짝 피는 5월이면 감잎이 초록으로 반짝였다. 나는 고향의 어머니가 하시듯 단옷날 아침이면 감잎을 따 덖은 뒤 감잎차의 은근한 봄맛을 즐기곤 했다.
그러나 그런 나무와의 즐거운 시간도 잠시뿐. 2년을 넘기던 겨울, 한파가 마을을 휩쓸고 갔다. 해를 넘겨 4월이 가고 5월이 와도 감나무는 깨어나지 못했다. 감나무만이 아니라 포도나무며 자두나무조차 냉해를 입었다는 소문이 마을을 돌았다.
그해 나도 한 그루밖에 없는 자두나무를 잃었다. 포도나무며 단감나무는 5월이 다 갈 무렵에야 간신히 잎을 틔웠지만 가지들의 반은 얼어죽었다. 동해의 위력을 나는 그때 알았다.
그런 아픔을 겪고도 감나무는 4년째 되던 봄 감꽃을 피운 자리에 감을 열었다. 냉해 입었던 해를 빼면 정확히 3년째다.
올해 단감나무는 단감을 딱 네 개 키웠다. 비록 네 개지만 점점 붉어가는 감을 바라보는 동안만은 마음이 고향에 가 닿는 느낌이었다. 감잎이 다 떨어지고 감만 주렁주렁 달린 감나무와 가을 하늘과 모락모락 피는 저녁 연기.
첫해 첫수확 치고 감이 굵다. 아내가 감 아래에 바구니를 가져다 댄다. 나는 손으로 따도 될 일을 감꼭지에 전지가위를 댄다. 그리고 감나무가 들으라고 감을 따며 소리쳤다.
“한 접이요! 또 한 접이요!”
나는 예전 아버지처럼 마치 감 네 접을 따 담듯 감 네 개를 땄다. 그걸 열어 익히느라 감나무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단감나무의 그간의 노고가 생각할수록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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