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요즘 세상 풍습

권영상 2022. 11. 21. 00:01

요즘 세상 풍습

권영상

 

 

집 가까운 느티나무 오솔길에서 가끔 유치원 아기들을 만나곤 했다. 내가 보기에 선생님을 따라 나들이도 할 겸 느티나무 숲의 자연도 만날 겸 찾아왔지 싶다.

“선생님, 모르는 사람 가요.”

그 중 한 아기가 선생님인 듯 한 분에게 지나가는 나를 알린다.

“웃어른한테 우리 인사합시다.”

그분이 그러자 선생님을 따르던 아기들이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한다. 10여 명, 귀여운 아기들의 인사를 한꺼번에 받는 일은 과분하다. 나는 가던 길을 잠깐 멈추고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답례를 해주곤 했다.

 

 

이들은 때로 느티나무 숲에 들어가 꽃을 찾고, 술래잡기 놀이도 하고, 낙엽 줍기도 했다. 우리 아파트에 사시는 분이 운영하는 유치원 원생들이다. 그들은 때로 여기에서 오솔길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만난다. 그들은 또 때로 우리 아파트 마당 놀이터에서 학습할 때도 있다. 어느 곳보다 비교적 안전하니까 장난감 자동차를 타거나 밀어주면서 논다. 어느 곳보다 비교적 안전하니까 풍선 차기를 하가나 세발자전거 타기도 한다.

 

 

물론 그들이 얌전하게 놀기만 하는 건 아니다. 때로는 소리치고, 울고, 선생님 목소리가 갑자기 커 올라 대체 지금 뭐하나 싶어 베란다에 나와 놀이터 마당을 내다 볼 때도 있다.

그때마다 이들의 소란스러움이 없다면 아파트는 하루 종일 얼마나 고적할까, 하고 마음을 바꾼다. 일상을 방해받지 않고 조용히 지내고 싶은 건 누구나 누리고 싶은 욕망이다. 어쩌면 그건 누구나 누려야할 권리일 수도 있다. 그러나 권리 권리 하기보다는 먼저 그 소란스러움을 이해하는 열린 마음도 소중하다. 그것은 때로  우리를 성숙시키기도 하고, 우리를 긴장하게 할 때도 있다.

 

 

근데 요 몇 달 전이다.

느티나무 오솔길에 현수막이 내걸렸다. ‘길을 가는 것 이외의 활동을 삼가주세요. 동그라미아파트 부녀회’ 라고 적혀 있었다. 동그라미 아파트라면 이 느티나무 숲을 끼고 있는 아파트다. 나는 현수막에 적혀 있는 글귀가 무슨 뜻일까 궁금했다. 길을 가는 것 이외의 활동이라면 누군가가 아파트를 향해 무슨 몹쓸 짓을 한다는 건가.

그러고 얼마 지난 뒤다. 젊은 분 넷이 느티나무 숲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빙 둘러가며 쇠그물 펜스를 치고 있었다. 그 일을 하는 분에게 갑자기 웬일이냐고 물었다.

 

 

“저 아파트 분들이 아이들이 소란스럽다고 구청에 민원을 냈나 봅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아, 했다. 그러니까 '길을 가는 것 외의 활동'이란 게 유치원 아이들의 좀은 소란스런 학습이었다.

아이들의 소란을 참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럴 수도 있겠다 했다. 얼마나 참기 힘들었으면 펜스를 쳐달다고 민원을 냈을까. 그러다가 또 누구보다 가장 먼저 이해해 주어야할 엄마들이 자식 같은 아기들의 소란을 참아주지 못하다니, 하는 마음으로 바뀌었다. 자신들의 소유도 아닌 이 느티나무 숲을 봉쇄하는 처사가 몹시 안타까웠다.

 

 

“아파트 값 떨어질까 봐 그러는 거겠지요.”

펜스를 설치하던 한 분의 말이 더욱 나를 씁쓸하게 했다.

다른 이도 아닌 엄마들이, 다른 이도 아닌 아기들에게 이런 몹쓸 일을 하다니! 너그럽게 이해해주던 인심은 다 사라지고, 오직 이해관계만 남아있는 것이 요즘 세상 풍습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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