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피가 돌아왔다
권영상
구피가 돌아왔다. 3년만이다.
“이제는 형님이 힘들어 해요.”
저번 길 건너 처형 댁에 들렀을 때 처형이 그런 말을 했다. 나는 별 생각 없이 ‘애도 왔는데 키워보죠 뭐,’ 하는 식으로 대답을 얼버무렸다. 얼버무렸다는 말이 옳다. 17년간 강아지 난나를 키운 끝이라 솔직히 구피를 돌려받아 키울 엄두가 안 났다.
구피는 맑은 어항 속에서 예쁘게 놀고 있었다. 모두 서른한 마리라 했다. 처음 처형 댁에 맡길 때 다섯 마리였는데 그렇게나 많은 식구를 불렸다. 깜장, 빨강, 초록 점박이와 황금빛 가로선이 있는 구피는 송사리처럼 앙증맞다. 예쁘다. “야, 진짜 예쁜 녀석들이네!” 구피를 들여다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런 탄성을 지른다.
부채처럼 활짝 편 꼬리를 흔들며 헤엄치는, 그 손톱만치 작은 열대어들에겐 뭐니 뭐니 해도 관상의 즐거움이 있다. 한번 눈길을 주면 못 뗀다. 모였다가 흩어졌다가, 주둥이로 물방울을 만들거나 숨바꼭질하듯 수초 속을 드나드는 걸 멍하니 들여다 보는 일은 즐겁다. 시쳇말로 불멍처럼 물멍처럼 산멍처럼 욕심을 내려놓고 바라보는 순간만은 마음이 고요해진다.
구피를 처형 댁에 맡겨드린 지 3년이 됐다.
처음 딸아이는 열대어 가게에서 샀다며 구피를 봉지에 담아 왔다. 예뻐서 발길이 떨어지지 않더라고 했다. 딸아이는 한 달을 애지중지 보살피다가 우리에게 맡기고 방학이 끝나자 집을 떠났다.
강아지 난나와 무려 17년을 함께 한 뒤라, 그러니까 난나가 치르는 노년의 질병과 죽음을 직접 겪고 난 아픔이 있어 우리는 많이 지쳐있었다.
“애가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사왔다는 걸 어떡해.”
아내는 길 건너 언니네 거실에 어항을 내려놓으며 그렇게 하소연했다.
아내의 언니인 나의 처형은 딸아이를 갓난아기 때부터 돌보아 주었다. 맞벌이부부인 우리로선 처형이야말로 아이를 부탁드릴 막다른 보루였다. 결국 처형 내외분과 조카들 속에서 딸아이는 외롭지 않게 잘 컸다. 그렇게 다섯 살이 될 때까지 처형의 손에서 딸아이가 컸으니 딸아이 일이라면 지금도 처형은 거절하지 못한다.
내게 손위 동서이신 형님은 성미가 꼼꼼한 분이다.
어떤 부탁이라도 한번 받아들이면 내 일처럼 여기신다. 구피도 지난 3년 동안 1주일에 두 번씩 단 한 번의 어김없이 어항의 물을 갈아주셨단다. 그러고도 충분히 남을 분이다.
가끔 처형 댁에 들르면 거실에 조용히 놓여 있는 어항보다 형님이 물을 갈아주고 있는 어항을 더 많이 봤을 정도다. 그때마다 미안함을 느끼긴 했지만 처형 댁에 맡길 때부터 나는 어항을 그냥 드리는 걸로 생각했다. 그만큼 나는 분명하지 못하고 얼버무리는 식이다. 하지만 형님은 어디까지나 맡았으니 잘 돌보아 끝내 돌려주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언젠가 가져갈 수 있을 때에 가져가게.”
형님은 그 언젠가를 위해 한 마리도 다치지 않게 구피를 꼼꼼히 돌보셨던 거다.
그러던 형님이 올해부터 사흘씩 많게는 일주일씩 자동차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여행지에서도 구피 걱정에 잠을 못 주무셨대.”
저녁 무렵 언니 집에 들러 어항을 차에 싣고 돌아온 아내가 그 말을 했다.
갓난쟁이 딸아이를 5년이나 맡아 돌보아주신 처형 내외분의 정성을 이제야 알겠다. 딸아이가 잘 자란 데엔 그런 손길이 있었다. 형님의 손길을 느끼듯 어항 속 구피를 들여다본다.
<교차로신문> 2022년 12월 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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