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강황을 저며 말리다

권영상 2022. 10. 26. 17:46

 

강황을 저며 말리다

권영상

 

 

마루에 김장매트를 깔고 햇볕에 말릴 걸 내온다. 해마다 조금씩 심어온 생강과 기껏 네 개밖에 못 딴 모과와 올해 지인의 권유로 처음 심어본 강황이다.

집의 안이 동향이다 보니 구름 없는 아침이면 햇빛이 좋다. 그 볕이 아까워 해가 들기 무섭게 둥그런 매트를 펴고 그 위에 널고 말리고 걷어들이는 일을 한다. 그게 내 몫이다.

생강과 모과는 얇게 저며 말려 보았지만 강황은 처음이다. 처음인 만큼 그 빛이 새삼 놀랍고 예쁘다. 지난해 겨울이 들어설 때쯤 아내의 친구가 참 좋더라며 강황 알뿌리 십여 개를 보내왔다. 카레가루를 만든다는 그것은 손가락만치씩 작지만 꼭 토란을 닮았다.

 

생강을 심을 때, 그러니까 4월 중순 그 무렵, 강황도 심었다. 모양은 토란이지만 그게 올라와 잎을 피우고 성장하는 모습은 필시 칸나였다. 힘차게 커 오르는 실궂한 줄기와 넓은 잎자락은 꽃이 안 필 뿐 칸나와 진배없었다.

마침 길가 쪽 텃밭 둘레에 빙 돌아가며 심었는데 이게 울타리 구실을 충실히 했다. 웬만한 담장 못지않았다. 우선 바깥에서 들어오는 시선을 가려주어 마음을 자유롭게 했다. 바람이 불 때면 푸른 바람을 가득 몰아와 너울너울 춤추듯 일렁였다. 해가 뜨거운 여름날에는 그 넓고 시원한 초록 그늘에 앉아 먼데 있는 친구에게 문자를 보내기 좋았다.

 

 

빗소리를 들으려 창밖에 대나무를 심는 이들이 있다지만 빗소리에는 강황이 제격이다. 가는 이슬비에서 굵은 장맛비까지 도닥도닥 빗방울 소리를 좀체 놓치지 않는다. 강황 잎은 칸나나 파초 잎보다 얇아 비에 예민하다. 청개구리란 놈이 그걸 알고는 종종 강황 숲에 들어와 잎을 하나씩 차지하고는 비를 예고했다. 비 올 무렵, 강황 숲에 우는 청개구리 소리는 먼데 우주에서 걸려오는 전화벨 소리 같다. 달려가 받으면 그런다. 곧 비 내릴 거라고.

 

 

나는 가끔 아내더러 강황을 보내준 친구에게 이 우연한 선물을 받아 여름을 잘 나고 있다는 말을 전해주기를 바랐다. 그 말을 언젠가 전하고 얻어온 대답을 아내가 내게 말해주었다. 가을이면 또 한 번 놀랄 거라고.

나도 아내도 그게 무슨 말인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근데 그 말을 서리 내린 뒤 강황을 캐어보고 알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토란처럼 생긴 알뿌리를 깨끗이 씻어 얇게 저며 보면서 알았다는 말이 옳겠다. 칼끝에서 저며져 나오는 생강편의 빛깔이 너무 고왔다. 정말이지 뭄바이의 어느 향신료 가게에서 보던 그 샛노란 카레가루, 그 빛 그대로였다. 이렇게 예쁜 노랑이 알뿌리 속에 고이 숨어 있었다니! 강황은 그 푸른 잎과 줄기로 햇빛 속에 깃든 노랑만 골라내어 제 몸에 저장했던 것이다.

 

 

그 노랑 절편을 김장 매트를 위에 한 잎 한 잎 널 때의 기분이란 오묘하다. 햇볕을 송두리째 받도록 서로 겹치지 않게 쪽 놓는다. 이게 가을이다. 가득히 생강편을 널어놓고도 일어서지 못한다. 일어나다가도 다시 앉는다. 강황 편으로 가을볕이 소복소복 쏟아진다. 그걸 들여다 보고 있으려니 매트 곁을 떠나기 싫다. 서툰 숟가락질로 밥을 떠먹는 아기를 바라보는 부모 마음이 이렇겠다.

마루에선 또 생강이 마르고, 달콤한 향기를 뿜으며 모과편이 마르고 있다.

 

 

시간이 지나 해가 서쪽으로 기울면 나는 매트를 들고 서쪽으로 난 뜰에 펼쳐 놓을 거다. 가을볕은 건조해 만지면 바삭바삭 소리가 난다. 그 볕을 못 이겨 샛노란 강황 빛도 시시각각 마른 갈잎 빛깔로 변해간다. 그 때쯤이면 나는 그만 서러워진다. 저렇게 곱고 예쁜 것도 잠깐이라는 것 때문에.

 

<교차로신문>2022년 11월 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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