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티나무 길에서 만난 고양이
권영상
저녁 어스름 시간이다.
동네 산에 올랐다가 느티나무 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어디선가 고양이 우는 소리가 났다. 힘없고 연약한 울음소리였다. 여기저기 두리번거렸지만 고양이는 보이지 않았다. 다시 울음소리가 들렸다. 길을 따라 난 수로 안이었다.
거기 감장 고양이 한 마리가 울고 있었다. 지나가는 발소리를 듣고 운 모양이다. 나를 빤히 올려다본다. 내가 한 걸음 다가가자, 후닥 달아날 태세다. 그러면서도 한 녘으론 또 내게 구원의 손을 내밀 듯 그 연약한 목소리로 운다.
며칠 전에 본 그 고양이 같았다.
그때는 비가 왔다. 우산을 쓰고 이 느티나무 길을 가고 있는데 숲 안에서 고양이가 나를 보고 울었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아기 고양이었다. 내가 야옹, 하면서 너, 어디서 왔니? 하고 묻자, 저쪽에서 새끼를 지켜보던 어미 고양이가 와락 제 새끼 쪽으로 달려왔다.
그런 제 어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기 고양이는 내 앞으로 다가왔다. 갑자기 어미 고양이와 나 사이에 긴장감이 흘렀다. 어미 고양이 눈빛이 번쩍거렸다. 나는 이 긴장감을 풀어주기 위해 야옹, 한 번 더 울어주고는 걸음을 옮겼다.
모르기는 해도 고양이라면 한배에 여러 마리 새끼를 낳았을 텐데 기껏 이 한 마리를 지켜낸 모양이다. 빗속에 그들을 두고 가면서 나는 이 어미의 슬프고도 빈한한 삶을 생각했다.
어쩌면 이 고양이가 그때 그 아기 고양이인 듯 했다. 며칠 사이 제법 컸다. 그러나 그때 그를 지켜주던 어미 고양이는 사라지고 지금은 혼자다. 생각 같다면야 가냘프게 우는 고양이를 넝큼 끌어안고 가겠지만 그게 어디 생각만으로 되는 일인가.
딸아이를 키우느라 반려동물들을 수없이 키웠다. 푸들, 호금조, 십자매, 앵무새, 라이언래빗에, 열대어며 닭이 된 병아리까지.
그들의 약점은 모두 때가 되면 죽는다는 것이다. 요 보름 전쯤만 해도 베란다 조롱에 살던 십자매가 떠나보낸 동무가 그리웠는지 훌쩍 가버렸다. 홀로 조롱에 갇혀 지내는 게 힘들 것 같아 조롱 문을 가끔 열어 주었는데 그렇게 잘 울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나가보니 베란다에 놓아둔 꽃 화분까지 날아와 그만 앉은 채 죽어 있었다.
아무리 동물의 목숨이어도 죽은 모습을 보는 건 힘들다. 보는 만큼 마음이 아프다. 우리 집에 찾아와 깨끗한 아침을 열어주던 그 명금조를 나는 티슈로 겹겹이 감싸들고 집을 나섰다. 내가 늘 오르는 산길 곁에 그를 묻어주고 싶었다. 산은 조롱 속 새들이 가장 간절히 가고 싶어하는 그리움의 땅일지 모른다. 산에 들어서자 넓은 누리장나무 잎으로 다시 한 번 십자매를 감싸서는 잣나무 숲 우거진 곳에 묻었다.
가끔 산을 오를 때면 십자매가 묻힌 곳을 지난다.
다음 생에도 네가 좋다면 그때는 푸른 하늘을 나는 새로 태어나라. 그 말을 하곤 한다.
안 됐지만 나는 그 어린 고양이를 두고 혼자 집을 향해 발을 옮겼다. 그냥 가는 내 발소리에 서운했는지 야옹, 운다. 가다가 돌아다봤다. 고양이가 수로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나를 물끄러미 보고 있다. 그러다가 내 눈과 마주치자, 다시 수로 안으로 들어간다.
느티나무 숲이 점점 어두워가는 저녁 무렵, 혼자 걸어가는 내 등 뒤에서 그의 울음소리가 자꾸 들려온다. 라이언래빗을 어른 토끼로 키워 청계산 칡덩굴 아래에 놓아주던 때가 떠오른다. 그 일 이후 우리는 그 일을 얼마나 후회했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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