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가까운 안마당 풍경
권영상
추석을 앞두면 아버지는 논에 나가 많지도 않게 올벼 대여섯 단을 베어오셨다. 그걸 벼 훑는 기계에 훑어 추석에 맞출 요량으로 멍석에 말리셨다.
그 무렵, 마당엔 올벼만이 아니라 고추밭에서 딴 익은 고추도 한두 멍석 널린다. 그리고 집 뒤 갯가에서 베어온 부들도 마당의 한 자리를 차지하여 마른다. 갯가엔 부들이 많았다. 부들을 베어 말려놓으면 한겨울 일손이 한가할 때 아버지는 그걸로 부들자리를 매셨다. 아직 장판이 없던 시절, 방에 깔기도 했지만 어업하는 이들이 고기잡이배 침실에 깔기 위해 사들였다. 키가 훤칠한 부들은 나무 사다리를 뉘여 놓고 그 위에다 가지런히 말렸다.
농가의 이 즈음의 마당은 아무리 넓다 해도 비좁다.
하지 근처에 캔 감자를 갈무리하는 곳 역시 마당이다. 지금은 감자를 심어 놓기만 하면 끝이다. 그 나머지일은 중간 상인들이 저들 비용으로 키우고 캐어간다. 그러나 예전엔 그 모든 것이 농사짓는 이들의 고된 몫이었다. 밭에서 캔 그 많은 감자는 집안 마당으로 들여와 물 빠짐이 좋은 자리에 무더기무더기 둥그렇게 쌓아놓고 짚 이엉을 덮어 바람에 말렸다.
볕 좋은 날에 보면 농가의 마당은 채색을 해놓은 그림 같다. 여기저기 둥그런 감자무더기들과 초록빛 부들, 멍석 위에서 마르는 빨간 고추와 누런 올벼들이 눈부시다.
이쯤이면 아버지는 숙제에 매달려 있는 어린 나를 불러 다짐을 받으셨다.
“벼멍석 잘 지켜라. 알았지!”
그러곤 들에 나가셨다.
어른들이 없는 기미를 알고 살곰살곰 벼 멍석을 넘보는 놈들이 있다.
암탉들이다. 암탉들도 갈볕에 마르는 올벼가 탐날 테다. 그들은 딴전을 피우는 척 내 시선을 돌려놓고는 어느 결에 멍석 사이로 걸어 들어와 벼를 쪼아 먹었다. 두툼하고 단단한 부리로 팍팍팍 야무지게 쪼았다. 쪼아만 먹고 슬쩍 가버리면 누가 알까. 닭은 꼭 그 ‘달그새끼 고집’을 피운다. 다부진 발톱으로 벼를 파헤쳐 표를 해놓고 간다.
“벼 멍석 잘 지키라 했는데 뭘 하고 있었누!”
이 일을 알면 한소리 하실 텐데, 하고 방안에서 나와 파헤쳐놓은 올벼를 한 톨 한 톨 주어 올린다. 그러다가도 의젓한 생각이 들면 두 발로 슥슥 벼를 저어주거나, 부들을 한 번씩 뒤집어 주거나, 고추 멍석의 고추를 뒤적뒤적 뒤적여 준다. 그때마다 발견하는 것이 있다. 멍석 귀퉁이에 큼직한 얼룩강낭콩이다. 집으려고 보면 그건 암탉들이 멍석 위에 누어놓은 얼룩강낭콩을 닮은 닭똥이다. 닭똥도 제가 고추나 되는 것처럼 갈볕에 누워 보송보송 마른다.
이제 며칠 있으면 추석이다.
이 올벼가 마르면 디딜방아에 벼를 찧어 추석 아침 고소한 햅쌀밥을 먹을 거다. 추석이라고 별달리 찾아올 이도 없고, 찾아뵐 조상님도 없지만 아버지는 가족들을 위해 올벼를 베어 햅쌀밥을 마련하셨다. 어머니는 눈부시도록 하얀 입쌀가루 반죽에 콩꼬투리에서 갓 깐 연둣빛 풋콩으로 송편을 빚으셨다.
추석이 얼른 왔으면, 그때는 추석이 기다려졌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옛 시절의 추석을 기다리는 이들도 없고, 그 옛날 농가의 그림 같은 가을마당 풍경도 다 사라지고 없다.
혼자 있는데 누가 현관문을 두드린다. 나가보니 마트에서 온 배달이다. 아내가 추석이라고 이것저것 사서 배달을 시킨 모양이다. 안에 들여놓고 달력을 보니 내일부터 추석연휴가 시작된다. 젊은 날 같으면 고향 찾을 생각으로 지금쯤 한껏 마음이 부풀어 있을 텐데, 이젠 찾아갈 고향집도 없고, 부모님도 먼 길 떠나신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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