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까마귀는 재미있다

권영상 2022. 7. 19. 08:39

 

까마귀는 재미있다

권영상

 

 

요 몇 년 풍신이 몸이 아팠다.

“네가 몹시 총명하니 올해도 내 부탁을 좀 들어다오.”

풍신은 까마귀를 불러 앉혔다.

이 풍신이 누군고 하면 ‘음력 2월의 신령이 된 바람’이다. 그러니까 바람의 신이다. 풍신은 해마다 음력 초하루면 사람 사는 집마다 내려와 그 집안 사정을 두루 살펴서는 그달 스무날쯤 하늘로 올라간다. 그는 옥황상제를 알현하며 집집의 사정을 고한다. 그 사정을 두루 들은 옥황상제는 그 해에 있을 마을의 길흉화복을 적어준다. 그걸 가지고 내려와 마을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일을 하는 분

이 풍신이다.

 

 

“올해도 이 일을 네가 좀 맡아줬으면 좋겠다.”

까마귀는 기꺼이 풍신의 부탁을 받아들였다.

2월 스무 날, 까마귀는 풍신이 적어준 문서를 물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는 풍신이 적어준 사정을 옥황상제께 고하고 옥황상제가 적어준 길흉화복 명부를 받았다. 그걸 물고 부지런히 내려오다가 그만 행복감에 취해 노래 한 곡을 불렀는데, 부르고 나니 입에 물었던 명부가 사라졌다.

 

 

까마귀는 지난해처럼 동네 높은 나무 끝에 내려앉았다.

마을 사람들은 올해는 또 이 마을에서 누가 병이 나고 또 누가 죽는지 그걸 듣기 위해 긴장하며 까마귀를 쳐다봤다.

명부를 잃어버린 까마귀는 올해에 죽을 사람들 이름을 되나따나 마구 불러댔다.

그리고 그해, 어찌된 영문인지 불린 사람들은 그가 젊든 늙든 어리든 건강하든 모두 죽었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까마귀를 두려워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세상을 떠나는 순서는 대체로 나이 많은 순이었다. 근데 이 사고가 있고부터 죽는 일에 순서가 없어졌다.

이 이야기는 어릴 적 동네 어른들로부터 우스갯소리로 들었다.

 

 

까마귀가 흉조로 불리는 배경에 이 이야기도 한 몫 했을 테다.

근데 이 까마귀가 우리 아파트 옆 숲에 무리지어 산다. 아침이면 이들의 울음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가만 들으면 재미있다. 즈네들끼리 분명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 같다.

“안녕! 잘 잤어?”

"응. 너도 잘 잤어?"

날씨 좋은데 오늘 뭐 할 거야? 라거나 놀러 갈래? 말래? 싫어? 그래도 우리 같이 가자! 너 안 가면 나도 안 갈래! 좋아, 그럼 우리 같이 가자!

주거니 받거니 하는 울음소리가 정말 그렇게 들린다.

목청이 맑기도 탁하기도 하고, 응석을 부리거나 동조를 구하기도 하고, 토라지거나 친해지고 싶어 안달하기도 한다.

 

 

가끔 동네 산에 오를 때면 사람이 오는 걸 알아보고, 얘들아, 여기 사람 온다! 와서 인사해! 한다. 그러면 누구야? 누구? 어디 간대? 이름이 뭐래? 우리하고 놀아줄 거래? 그렇게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내가 가는 길을 따라 나무를 건너뛴다.

까마귀가 여러 개의 말을 가지고 있다는 건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까마귀가 특히 마음에 드는 건 무리의 우두머리를 두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은 각자의 머리로 상황을 판단하며 살지 누군가 리더의 판단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거다.

옛사람들이 까마귀를 흉조라 하면서도 풍신이 하는 일을 까마귀에게 맡긴 걸 보면 그분들 역시 까마귀를 영리하다 못해 비범한 새로 인식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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