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꽁이 우는 마을
권영상
아침 기상예보 대로라면 비가 온다 해도 열흘 뒤 장마철이 되어서나 온다.
그동안 가물어도 너무 가문다. 동네 사람들 눈치 보며 수돗물을 받아다 텃밭에 뿌려준다. 작물이 폭염에 널브러져 가는 걸 보고 그냥 있을 수만은 없다.
가뭄을 한탄하고 들어온 저녁 무렵이다. 바람이 불고 낮은 구름이 몰려오더니 웬걸, 아닌 저녁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비도 비도 폭우 수준이다. 기상예보가 몰라도 참 한참을 모른다.
온 들판이 거센 폭우에 행복한 비명이다. 그걸 보면서도 나는 가뭄에 단련돼 있어 잠깐 이러다 말겠지, 하고 끝나길 기다리지만 아니다. 밤을 새워 올 모양이다. 그제야 인터넷 날씨를 꺼내본다. 금방 바뀌었는지 밤 동안 100밀리 수준으로 온단다.
지붕에서 낙숫물 듣는 소리가 요란한 밤이다.
폭우를 기다렸다는 듯 맹꽁이가 운다. 집 둘레 수로가 꺾이는 곳에 만들어진 물웅덩이에서 우나보다. 맹꽁! 맹꽁! 맹꽁! 목청도 굵다.
저 녀석들이 가뭄에 기척 없이 몸을 숨기고 살다가 큰비 내리자마자 물 고이는 웅덩이를 찾아내려왔다. 그들은 서로 장단을 맞추어 ‘맹!’ ‘꽁!’ '맹!' '꽁!'하며 암컷을 부르고 있다. 폭우가 만들어내는 이 느닷없는 물웅덩이야말로 그들이 산란하기에 딱 좋은 절호의 장소다.
나는 불을 끄고 맹렬히 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와 맹렬히 암컷을 부르는 맹꽁이 울음을 듣는다.
내가 여기에 내려와 살던 첫해 첫여름의 장마가 시작되던 밤이다. 그 밤에도 맹꽁이가 울었다. 난생 처음 들어보는 그 맹꽁! 맹꽁! 소리가 내 귀엔 엄마! 엄마! 하고 들렸다. 비 오는 칠흑의 밤, 그 소리는 안마당을 이리저리 다니며, 마치 잃어버린 엄마를 찾는 좀 부실한 이의 목소리를 닮아 있었다. 갑자기 섬뜩했다.
가뜩이나 낯선 곳, 낯선 집, 낯선 비 내리는 밤이다. 나는 단단히 마음을 먹은 뒤 외등을 켜고 방을 나섰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속에서 섬뜩한 목소리가 여전히 유령처럼 울부짖었다. 나는 소리나는 곳을 향해 나무 도막을 던지고, 우산을 던지고, 신발을 집어 던졌지만 소리는 그치지 않았다.
내가 하도 소동을 치니까 옆집 경희 아빠가 손전등을 들고 나왔다.
“저 소리가 무슨 소린지 무서워 잠을 못 자겠어요.”
나는 두려움에서 풀려난 아이처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도움을 청했다.
“아이 참, 선생님도! 맹꽁이가 우는 걸 가지고 그러시네요.”
그러며 손전등을 번쩍이며 되돌아갔다. 나는 혼자 싱겁게 웃었다.
그게 벌써 10년 전 일이다.
근데 오늘 밤이다.
“아니, 대체 이게 뭔데 이러죠? 개가 짖는 것도 아니고.”
수원에서 도시살이를 하다온 예순이 넘은 옆집 아저씨 목소리가 바깥에서 난다. 그러고 보니 그 사이 경희네는 이사를 갔고, 수원집이 이사를 왔다.
나는 그 예전의 경희 아빠가 떠올라 손전등을 켜들고 나갔다.
“아니, 도대체 저게 뭔소린가요. 섬뜩하네요.”
그때의 내 모습이 저랬을 것 같다.
나는 그분에게 그게 맹꽁이 울음이란 걸 알려주고 싱긋이 웃으며 들어왔다.
그 맹꽁이가 지금도 울고 있다. 맹꽁이는 오염에 취약한 멸종 위기 종이다. 맹꽁이가 우는 마을은 맹꽁이 덕분에 안심하고 살 수 있다. 경험에 의하면 한 일 주일 맹꽁이는 산란을 위해 저렇게 밤새워 운다. 좀 성가시긴 해도 그의 울음에서 생명을 느낀다.
<교차로신문> 2022년 6월 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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