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가 울지 않는 한여름
권영상
기온이 연일 30도를 오르내린다.
그건 여름이 점점 고비를 향해 치달아 가고 있다는 뜻이다. 밤이면 비다. 비도 폭우 수준이다. 폭염과 폭우가 나타난 게 벌써 유월 말부터다. 바깥에 나갔다 들어올 때면 몸 안의 열기가 달아올라 찬물 샤워에 매달려야 한다.
밤 역시 덥기는 마찬가지다. 기상예보도 몇몇 지역의 열대야를 예고하는 일이 잦아졌다. 이부자리를 안고 거실로 나와 보지만 한여름밤의 잠처럼 고단하다. 마치 8월을 옮겨놓은 듯한 7월이다. 보통 폭염은 7월 말에 시작하여 8월 15일을 정점으로 수그러들었다. 그러던 게 올해는 아닌 시기에 덜컥 찾아와 나도 모르게 에어컨에 손이 가게 한다.
아내가 시장을 보아온 박스에 바나나가 들었다. 하우스에서 재배한 국산 바나나라 달단다. 후숙을 위해 뒷베란다에 내놓고난 아내가 친구가 보낸 사과를 냉장고에서 꺼낸다. 초등학교 동창 ‘산꼴때기’가 보낸 사과다. 아내의 동창 중에 산꼴때기라는 이가 있다. 산골 중에서도 학교로부터 먼 산골에 살아 붙은 별명이라 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암만 그래도 나이 많은 동창생을 보고 그런 말 하지 말라고 나는 한 마디 한다.
그러면 아내가 펄쩍 뛴다. 우리가 아니라 본인이 산꼴때기라는 별명을 무슨 훈장처럼 말을 시작할 때마다 ‘산꼴때기 중에 산꼴때기가 또 누구냐?’ 하면서 이야기를 맛있게 끌고 간다는 거다. 그 산꼴때기가 일찍이 눈이 밝아 아닌 때에 고향 산골짜기에다 사과밭을 일구었단다. 감자나 간신히 심어먹을 눈 내리고 추운 땅에 사과밭을.
지금 식탁에서 깎고 있는 사과는 그 ‘산꼴때기’라는 이에게 신청한 사과다.
그러고 보니 사과는 이미 본고장 대구를 떠나 북으로 북으로 북상하여 강원도 양양 산골짜기로 찾아들었다. 산꼴때기 사과를 먹는 동안, 아니 국산 바나나며 망고며 파파야를 생각하는 동안 문득 떠오르는 게 있다.
매미 소리다.
어쩐지 매미 울음소리가 없다. 한여름이 이미 오래전에 도심 안에 출렁이며 들어섰는데 매미는 왜 오지 않을까. 대체 얼마나 먼 곳에 있기에 이 폭염을 모른 척 하고 있는 걸까.
매미를 두고 사람들끼리만 여름을 맞는 건 아닐까. 매미 울음소리 없는 여름은 공허하다. 초록숲 빈 공간마다 찌잉, 하는 매미 소리가 그득 들어차야 폭염도 이겨낼 힘이 생기는데 어쩐지 그 매미가 없다. 어쩌면 우리나라 전역으로 재배가 확산되고 있다는 바나나 망고 파파야는 알겠다. 대구에서 쫓겨나 강원도 산골짜기로 피신해 와 사는 사과들이라면 혹 알지 모르겠다.
매미소리 없는 여름을 생각하려니 섬뜩하다.
우리가 매미를 쫓아낸 건 아닐까. 우리는 이미 반딧불이 없는 여름을 살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이미 맹꽁이를 내몰고 그들의 땅에 버젓이 아파트를 지어 살고 있지 않은가. 숲에 들어서면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예쁜 새 울음소리를 들을 때가 있다. 참 예쁜 소리구나! 하다가도 먼 남쪽 아열대에 사는 새들이 여기까지 온 게 아닐까 생각하면 문득 두려운 생각이 든다.
정말이지 매미는 왜 안 올까. 한여름이 너무 일찍 찾아온 듯 하다. 매미야 제가 나올 마땅한 때에 나와 울면 그만이겠지만 속도 조절을 못하고 비틀거리는, 우리가 사는 이 땅의 기온이 문제다. 이럴 때마다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적혀 있다는 글귀가 떠오른다. 인류가 걸어온 자리마다 수많은 생물종이 멸종되었다는 그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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