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솔밭이 간직한 근현대사의 상처
권영상
고향에 일이 있어 내려갔다.
일보다 먼저 가보고 싶은 곳이 있었다. 마을 동녘 숨은솔밭이다. 숨은솔밭은 바다에서 불어오는 해풍을 막기 위해 오래 전 고향사람들이 조성한 소나무 숲이다.
지금은 장성하여 찾아오는 이들 모두 부러워하는 숲이 됐다. 붉은 적송이다. 고향의 이름에 걸맞게 울창하게 성장한 소나무 숲은 늠름하다. 멋스럽고 기품 있다. 마을을 보호하는 방풍림이다 보니 누구도 손대지 않은 자연림에 가깝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삼복더위에도 그 숲에 들어서면 솔바람 소리에 온몸이 서늘해질 정도다.
숨은솔밭이 좋은 건 소나무 때문만이 아니다. 솔버덩이 굵은 모래로 덮여있어 그 그늘에 앉거나 눕는다 해도 먼지 한 점 묻을 일이 없다. 소나무들은, 본디 소나무들이 가진 청정한 천성에 맞게 100 여년을 천연덕스럽게 살아내고 있다.
그러나 그런 숨은솔밭 소나무들에게도 상처는 있다. 곡절 많은 세상을 사는 이 땅의 나무치고 상처 없는 나무가 어디 있을까. 하지만 대개의 나무들이 자연과 부딪치는 생존의 아픔을 겪었다면 숨은솔밭 소나무들은 그것 이상이다. 잔인한 이데올로기의 상처를 입었다. 일제의 전쟁 광풍이 남긴 상처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 마을 입구에서 내렸다. 예전처럼 걸었다. 그리고 저만치 숨은솔밭이 건너다보이는 곳에서 멈추어 섰다. 숨은솔밭 소나무들이 마치 대양을 달리는 거대한 풍선처럼 논벌 건너에 드러났다. 바람을 한껏 싣고 어딘가로 마을을 이끌고 가는 형세이다. 어린 시절, 우리는 저 거대한 풍선이 우리가 바라는 아름답고 순정한 세상으로 데려다 주길 바랐다. 가방을 메고 등교를 하다가도 또는 들일을 하다가도 잠시 쉴 참에 바라보면 숨은솔밭은 마을을 통째로 싣고 마치 긴 항해 중에 있는 것처럼 부지런했다.
논벌을 지나 나는 숨은솔밭 속에 성큼 들어섰다.
옛날의 그 솔밭 그대로다. 마을에 아파트가 들어서고, 인구가 늘어났다지만 숨은솔밭만큼은 달라진 게 없다. 나는 마치 고향 분들을 만나 뵙는 것처럼 솔밭 입새에서부터 한 분 한 분 문안인사를 드리듯 걸으며 이렇게 늦게 찾아온 게으름을 책했다.
그럴 때에도 내 눈에 밟히고 내 손에 걸리는 것은 송진을 채취해간 일제의 나쁜 손이 저지른 상처들이다. 칼끝이 긁고 지나간 오래된 상처는 헐벗은 늑골 같아 다시 볼수록 아프다. 이제 나무들은 그때의 그 일을 다 잊었거니 했는데 그 상처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역시 나무는 사람들보다 한결 정직하다.
숨은솔밭 소나무들에겐 그 아픔만 있는 게 아니다. 남북 전쟁의 아픔도 지금껏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숨은솔밭이란 이름이 그 증거다. 그때 북쪽에서 붉은 군대가 포를 쏘며 내려올 때 마을사람들이 황망히 피신한 곳이 마을 건너 이 숨은솔밭이라 했다. 저녁 무렵, 세간을 싸들고, 빼앗길지도 모를 소를 몰고 와 이곳에 은신했다. 밤부터 비가 내렸고, 총소리는 거칠어졌고, 아무것도 모르는 소들은 두려워 울었단다. 으렁으렁 숲이 떠나가라 우는 소 울음소리를 그래도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숨겨준 게 이 소나무들이었다.
숨은솔밭은 그렇게 해서 붙여진 슬픈 이름이다.
고향의 소나무들에겐 그런 근현대사의 상처와 아픔이 있다. 모두 극성스러운 이데올로기가 만들어낸 상처들이다. 숨은솔밭의 늠름한 소나무들을 하나하나 쓰다듬어 본다. 나무마다 생생히 기록된 질곡의 역사가 손끝에서 아프게 읽힌다.
<교차로신문> 2022년 6월 2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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