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별에서 살다온 사람

권영상 2022. 6. 1. 18:28

 

별에서 살다온 사람

권영상



고층 빌딩 옥상에 나무 한 그루가 있다.

마치 별에 사는 나무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빌딩이 고층인데다 그 고층 빌딩이 서 있는 곳이 이 근방에서 가장 높은 언덕이다. 높은 언덕 위에 있는 고층빌딩이고 보면 그 까마득한 옥상 위의 나무가 왠지 별에 사는 것처럼 낯설다. 먼 이웃 별들과 밤이면 서로 소통하며 지낼 것 같은 신비감도 든다.

나무가 거기 별에 있는 것이 맞는다면 지금 내가 걸어가고 있는 이곳 역시 별이다. 그러니까 나는 이쪽 별 위를 걸어가며 그 회색별의 나무를 보고 있는 셈이다.

 

 

나는 오래 전에 이 별에 와 살고 있다. 이쪽에 온 생명은 누구나 언젠가는 그 어느 쪽으로 가게 되어 있다. 나 역시 이렇게 살다가 언젠가는 어느 별로 가는 거겠지, 그런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며 산다. 저 회색 고층빌딩 위의 외로운 나무처럼 주어진 자리를 지키다가 조용히 가는 게 인생이겠지 한다.

지하철을 타러 갈 때면 나는 잊지 않고 그 고층 빌딩 위의 그 나무를 올려다본다. 나무는 까마득한 높이에서 별처럼 초록빛을 내뿜는다. 그건 멀리서 보아도 다 아는 소나무다. 마치 설악의 가파른 귀면암 난간에 서 있는 소나무처럼 고독하다. 별이 뜨는 비룡폭포 위의 소나무처럼 아찔하다.

 

 

초록빛을 내뿜는 그 별의 소나무를 생각하며 예술전당 방향으로 가고 있을 때다.

동네 초등학교 정문을 지나 음식점 골목에 막 들어서는데 저쪽 길 끝 건물 옥상 위에서 누군가 물을 뿌리고 있다. 물보라가 반짝인다. 초록 숲이 있는 옥상 위다. 나무에 물을 주는 모양이다. 나는 그 물보라를 향하여 걸어갔고, 그 위의 누군가도 내 시선을 느꼈는지 가끔 내 쪽을 보았다. 가까이 다가가면서 보니 건물은 7층쯤 될까. 모자를 쓴 남자가 그 위의 하늘을 돌보느라 물보라를 일으키는 것처럼 보였다.

 

 

“거기 좀 올라갈 수 있을까요?”

나는 마치 그 별에 좀 갈 수 있을까요, 라고 하듯 일면식도 없는 이를 향해 소리쳤다.

내 목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주변 테라스에 나와 커피를 마시던 이들이 걸어 나오더니 내가 아니라 내가 소리친 그 빌딩 옥상을 쳐다보았다. 옥상 위의 남자도 내 목소리가 거기에 가 닿았는지 대숲 사이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올라 오시라네요!”

주변에 서 있던 분들이 먼저 알고 내게 말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 옥상은 짐작대로 7층이었다. 그 남자는 나를 데리고 오죽으로 빙 둘러싸인 옥상을 한 바퀴 돌았다. 그곳엔 오죽만이 아니라 소나무며, 꽃잎이 뚝뚝 지는 함박꽃, 라일락, 그리고 상추 고추 케일이 자라고 있었다.

우리는 댓잎이 수런거리는 오죽 그늘에 가 앉았다. 그는 마치 별에서 만난 나그네를 대하듯 내게 물에 담가 놓은 음료를 건네며 댓숲바람 소리를 듣자고 했다.

 

 

“눈을 감고 있으면 마치 별에 와 있는 기분이랍니다.”

예순이 넘었음직한 그 남자가 이 쪽 세상에 사는 사람답지 않게 내게 말했다.

옥상은 잔디로 파랗게 덮여 있었다. 그는 여기서 별을 꿈꾸며 살고 있었다. 영 사는 법이 우리별에 살고 있는 우리의 방식과 달랐다. 사람을 의심하거나 경계하는 빛이 없었다. 꼭 별에서 살다온 사람 같이 순수하고 약간 신비스러웠다.

 

<교차로신문> 2022년 6월 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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