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장미가 왔다

권영상 2022. 5. 27. 10:39

 

장미가 왔다

권영상

 

 

그 집에 장미가 왔다.

내가 서울을 잠깐 비운 사이 와 있었다. 그 집은 내가 다니는 길 건너편에 있다. 담장이 비교적 좀 높아 보이는 그 집은 지붕이 조금 밖으로 내다보이는 은밀한 집이다. 사람이 살고 있는지 아닌지 그 집은 언제나 한적하다.

늦은 오후, 내가 볼 일이 있어 그 집이 건너다보이는 이쪽 길을 가고 있을 때다. 장미는 나를 오래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나를 향해 손짓했다. 나는 잠시 길을 멈추어 서서 예쁘고 깔끔한 장미를 바라보며 벌써 왔구나! 했다.

 

 

장미는 올해도 불타듯 빨간 입술을 하고 왔다. 내가 아는 그 집 장미는 언제나 빨간 입술이다. 그렇다고 그게 질린다거나 싫다는 말이 아니다. 흔하긴 하지만 그 집 장미에게 있어 그 빨간 입술은 초록 살결과 대비되어 너무도 잘 어울린다. 장미를 말할 때 그 빨간 입술을 빼면 그거야 말로 볼게 없다. 장미의 빨간 입술은 때로는 깊게, 때로는 그윽하게 매력적이다. 그건 나만의 감성이 아니다. 수많은 이들 역시 오랫동안 그런 장미를 사랑해왔다. 그 고혹적인 붉은 입술 때문에 6월이 오기전부터 나는 장미를 기다렸다.

 

 

이쪽, 내게로 와!

장미가 마치 그런 표정으로 나를 건너다보고 있다. 장미는 대체로 순식간에 내 시선을 빼앗거나 내 마음을 훔친다. 그에게 한번 마음을 빼앗기면 그 누구도 내 마음을 차지할 수 없다. 장미는 성급하다. 그리고 도발적이다. 내 대답을 듣기도 전에 벌써 그 집 울담에 올라와 있다. 아니 울담을 타넘으려고 몸을 비스듬히 눕히고 있다.

 

 

나는 장미의 그런 모습에 놀라 그 집 방향의 건널목으로 가다가 다시 돌아섰다, 반갑기는 하지만 장미의 일방적인 태도에 좀은 머뭇거려졌다. 장미는 뜨겁고 열정적이라서 가까이 다가가면 너무도 반가운 나머지 두 팔로 내 목을 덥석 껴안을지 모른다. 행인이 많지 않은 오후이긴 해도 그런 모습을 보이는 건 위험하다.

그런 면에서 나는 남자로서 좀 쩨쩨하다. 하지만 나도 장미의 발칙함은 좋아한다. 무뚝뚝함 보다 때로는 좀 요염하고, 빨간 입술로 멋도 부릴 줄 아는, 도발적인 그의 액션이 먼저 기다려질 때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장미를 너무 가까이 하는 게 위험하다는 점이다.

 

 

장미의 사랑은 때로 내 몸에 상처를 입힌다.

장미의 몸에서 풍겨나는 깊고 정열적인 멋도 아름답지만 그녀가 내게서 돌아설 때는 정말 냉혹하다. 소스라칠 정도로 내 가슴을 아프게 찌른다. 그런 냉혹한 이별을 겪으면서도 장미가 돌아오면 나는 또 장미를 좋아한다, 나는 이 감정을 솔직히 이해하지 못하겠다. 여전히 장미는 아름답고 그가 풍기는 향기는 감미롭다.

장미의 매력은 극과 극, 사랑과 이별이라는 매우 강렬한 두 극단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창조와 파괴의 양극성을 가진 신들처럼 장미 역시 그럼 점에서 신과 다르지 않다. 여신이다. 아픔과 상처와 이별을 알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장미를 사랑하지 않는가.

 

 

나는 내일 아침에 다시 오겠다는 사인을 주고 가던 길을 다시 갔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골목길에서 다시 장미를 만났다. 그는 내가 가고 있는 이 뒷길을 어떻게 알았는지 길가 담장이나 아파트 울타리를 타고 올라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너무 가까이는 말고, 그렇다고 너무 멀리도 아닌 거리를 두고 장미의 입술에 코를 댄다. 장미는 그가 가진 그윽이 향기 나는 목소리로 내게 속삭였다.

행복해! 너무나 감동적이야!

 

<교차로신문>2022년 6월 2일자

 

'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크라이나를 후원하며  (0) 2022.06.09
별에서 살다온 사람  (0) 2022.06.01
검은등뻐꾸기의 섬뜩한 생애  (1) 2022.05.24
오솔길엔 속도가 없다  (0) 2022.05.19
쑥버무리떡의 풍미  (0) 2022.0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