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오솔길엔 속도가 없다

권영상 2022. 5. 19. 10:33

 

오솔길엔 속도가 없다

권영상

 

 

호젓한 오솔길이 좋다.

낯선 산을 오를 때면 곧게 만들어 놓은 길보다 그 산 뒤편에 숨어있는 오솔길을 찾아 걷곤 한다. 숲 사이로 난 오솔길이 좋다. 어린 생강나무나 단풍나무가 내 얼굴을 건드려 보려고 가지를 벋거나 내 발을 걸어보려고 뿌리를 슬쩍 드러내는, 그런 장난끼 있는 오솔길이 좋다. 나는 그들의 장난에 걸려들다가도 허리를 숙이거나 빙 에돌아 피해 가기도 한다.

 

 

그러나 오솔길 걷기가 진짜 좋은 건 오솔길의 구불구불함 때문이다. 구불구불하기 때문에, 이를테면 1분에 갈 거리를 5분에 간다. 더디 가는 길이 오솔길이다. 오솔길은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낸 길이 아니다. 그냥 그 산의 생김새에 맞게 누군가에 의해 생겨난 길이다. 언덕이 있으면 올라가고, 올라가는 일이 힘에 부치면 또 한 번 구부러지고, 가다가 바위를 만나면 거기 걸터앉기 위해 길은 그쪽으로 구부러지고, 가파르면 돌아가고, 골짝물을 만나면 건너뛰고, 숲이 깊어지면 자연히 길도 더욱 좁아져 숨소리 끊어지듯 사라져선 나중, 어느 곳에서 다시 이어지는 게 오솔길이다.

 

 

오솔길이 그러한 건 그 길을 처음 낸 사람이나, 그 뒷날 그 길을 걸어간 사람의 천성이 그렇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곧은길을 부리나케 달려가는 사람이 아니다. 그 사람은 1분 1초를 다투며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다. 인생을 잘 아는 사람이 그러하듯 산의 오름과 내림과 구부러짐의 형세를 잘 이해하는 사람이다.

저편에 있는 길 끝을 빤히 보면서도 일부러 그러듯 빈둥빈둥, 또는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가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기본적으로 생로병사가 있는 인생을 잘 아는 사람이다. 빨리 달려가 도달한 그곳에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를 분명히 아는 사람이다. 구불구불 가는 그 길이 어느 길보다 아름답다는 걸 잘 아는 사람이다.

 

 

속도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구불구불한 오솔길이 그의 천성에 맞지 않다.

그에겐 나무들의 걸리적거림이 없는 펀하고 잘 포장된 대로나 지평선처럼 전방이 뚜렷한 길이 맞다. 그에겐 가는 길보다 목적지가 중요하고 종점을 볼 수 있는 시야가 탁 트인 길이 천성에 맞다. 그러나 그런 길이 우리를 얼마나 허덕이게 하는지 길을 떠나 보면 금방 안다.

 

 

오솔길에서 속도를 찾는 일은 처음부터 무모하다.

지저귀는 새들 소리가 있다. 나뭇잎을 스치며 지나가는 바람소리가 있다. 숲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햇빛에 쪼그려 앉아 피는 산꽃이 있다. 여뀌꽃, 취꽃, 산부추꽃, 골짝 그늘에서 만나는 물봉선꽃, 떡갈나무 숲에 외로이 피는 하늘말나리꽃이 있다. 죄죄죄 흐르는 적지만 맑은 골짝물이 있고, 나무들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하늘과 조각구름이 있다.

그들을 만나면 길을 멈춘다. 좁은 틈을 내면서 서서히 마음의 문이 열리는 걸 느낀다. 내가 풀꽃이 되고, 나무가 되고, 새가 되고, 때로 하늘이 되는 걸 보면서 이 길에 들어선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알게 된다.

 

 

호젓한 오솔길에는 속도보다는 머뭇거림이 있고, 안식 같은 편안함이 있다. 나무 그루터기를 보면 무거운 몸을 내려놓아 잠시 쉬고 싶고, 골짝물 웅덩이에서 발견한 나를 혼자 두고 그냥 갈 수 없어 한참이나 들여다보고 싶어진다. 비탈에 선 나무에겐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무사히 지내는지 안부와 위로의 인사를 보낸다. 내 안에 꿈틀대는 속도에 대한 욕망은 이렇게 해서 점차 누그러진다.

오솔길이 좋다. 여태껏 포장이 잘 된 길을 달려왔다면 오늘쯤은 구불구불한 오솔길에 들어서 보는 것도 좋겠다. 정면 승부가 아닌 빙 에두르는 오솔길의 천성을 배우자.

 

<교차로신문>2022년 5월 26일자

'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미가 왔다  (0) 2022.05.27
검은등뻐꾸기의 섬뜩한 생애  (1) 2022.05.24
쑥버무리떡의 풍미  (0) 2022.05.14
작물을 존중하는 일  (0) 2022.05.06
40대, 그쯤 나이  (0) 2022.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