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그쯤 나이
권영상
“그 사람 몇 학번이지?”
맞은편에서 걸어와 내 곁을 지나가는 두 남자의 말이 귀에 선뜻 들어왔다.
얼핏 보기에 나이가 서로 비슷한 40대다. 재킷을 벗어 어깨에 걸쳤다. 아마 점심을 먹고 직장으로 돌아가는 길인 듯 손에 테이크아웃 커피를 하나씩 들었다.
문득 보라 아빠가 떠오른다. 그는 ‘당신 몇 학번이야!’ 그런 좀은 상스러운 말을 즐겨 썼다.
그때 내 나이도 40대쯤.
간신히 대출을 내어 조그마한 빌라 3층에 머물러 살았다. 2층엔 호리호리한, 한눈에 보기에도 맑고 선하게 생긴, 그러니까 세상 티끌에 때 묻지 않은 남자가 살았다. 부부 약사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약국을 하고 있었다.
1층엔 조금 전에 말한 보라 아빠가 살았다. 아내와 딸 둘에 아들 하나. 그는 아버지가 운영하는 사업체를 물려받아 그런지 그 나이에 고급 승용차를 해마다 신형으로 바꾸어 탔다. 살집이 많은 그는 어깨들이 그러는 것처럼 어깨를 잔뜩 세워가지고 다녔다. 플라타너스 나무에 샌드백을 달아놓고 아침마다 주먹을 어루만지며 그 그늘에서 걸어나왔다.
다들 이제 아홉 살, 열 살 되는 자식을 가진 40대 아빠들이었다.
“좋은 말할 때 타인의 차에 손대지 맙시다!”
언제부턴가 보라 아빠의 고급 승용차 앞에 그런 표지판이 서 있었다.
그러던 어느 밤, 그의 성난 목소리가 집 마당을 울렸다.
“대체 당신 몇 학번이야!”
퇴근하는 2층 약국집 남자에게 시비를 거는 모양이었다. 그는 타인의 차에 손을 대는 이가 그라고 여기는 듯 했다. 왜인지 그는 예의바르고 조신한 2층집 남자를 싫어했다. 하지만 외모와 달리 2층집 남자는 그런 시비에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았다.
“그러는 당신은 대체 몇 학번이야?”
호리호리해도 강단이 있었다. 싸움은 그렇게 시작되어 밤이 늦어서야 끝나곤 했다.
그런 다음 날이면 보라 엄마는 우리 집에 올라왔다. 아이들이 그러는 아빠를 대놓고 부끄러워하는데도 남편은 그게 멋진 모습이라 여기는 게 창피하다며 사과하러 다녔다.
하여튼 '당신 몇 학번이야'는 그런 식으로 주위 사람들의 눈총을 샀다. 그런데도 그는 웬일인지 교직에 있는 내게만큼은 본심을 속이지 않았다.
“아빠가 애들한테 보여줄 수 있는 권위가 그런 거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가 말하는 그런 거란 고급 승용차에, 이웃 남자들을 제압하는 모습 따위였다. 그래선지 그는 그 얼토당토않는 억지 신념으로 걸핏하면 2층집을 걸고 아옹다옹했다.
그들이 그러는 동안 나는 시골 출신답게 넓은 뒤뜰에 칸나를 심었다. 을지로에 나가 칸나 알뿌리 한 상자를 사다가 심으면 뒤뜰은 마치 사탕수수밭처럼 칸나가 우거졌다. 여름이 가까이 오면서부터 칸나는 그 특유의 불타듯 뜨거운 붉은 꽃을 피웠다. 그리고 늦은 가을이면 알뿌리를 캐어 잘 보관했다가 이듬해 봄이 돌아오면 지인들에게 그걸 선물삼아 소포로 부쳤다. 그렇게 그 집에서 3년을 살다가 우리는 모두 뿔뿔이 헤어졌다.
40대 그쯤 나이.
인생살이에 아직 서툰 남자들은 섣부른 인생관으로 황소처럼 고집스럽게 살았다. 당신 몇 학번이야는 잘 살고 있는지, 약국집 남자는 지금쯤 무얼 하고 있는지.
여름이면 지붕이 폭염으로 활활 달아오르던 그 3층 집, 수건을 물에 적셔 등에 얹고 하루에 대여섯 시간씩 글을 쓰던, 젊은 날의 그 옛집이 떠오른다.
<교차로신문> 2022년 5월 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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