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작물을 존중하는 일

권영상 2022. 5. 6. 21:39

 

작물을 존중하는 일

권영상

 

 

하루종일 마씨 절편을 기다린다.

마씨 절편이란 눈을 틔우기 위해 잘라놓은 마 조각이다. 바깥일을 하다가도 쉴 참이면 휴대폰을 연다. 혹시 배달 날짜와 시간이 들어왔나 하고 열어보지만 역시다. 안성 밭에 고추며 토마토 모종할 시기가 임박해 있다. 지금쯤 마씨를 가져가면 함께 심을 수 있어 딱  좋은 때다. 더는 기다리지 못하고 마씨를 서울이 아닌 안성으로 부쳐달라고 농장 주인에게 전화를 드렸다.

 

 

“걱정 마세요. 5월 초에 보내드리겠어요.”

그러나 약속한 그 5월 초순이 이미 기울고 있다.

더는 기다릴 수 없어 안성으로 내려와 모종을 모두 마쳤다. 생강이며 강황, 토란과 칸나는 집에서 보관한 걸 골라다 심었다. 이제 남은 건 마씨 절편이다. 꽃씨도 나왔고, 글라디올러스도 새움이 삐죽 나왔다. 그들을 보려니 마음이 자꾸 조급해진다.

 

 

지난해 겨울이다.

외출하고 돌아온 아내가 친구가 맛 보라고 주더라는 마를 가방에서 꺼냈다. 보도 듣도 못한 영지버섯을 닮은 마였다. 보라마라고 했다. 껍질이 열대과일 아보카도를 닮았다. 껍질을 벗기자, 놀랍게도 보라색 마의 본 모습이 선연히 드러났다. 빛깔이 곱고 속살이 흰 마와 달리 단단하다. 단면을 자르자 산호석에서나 볼 수 있는 진한 보랏빛이 요동친다. 즙을 내어 한 모금 마셨다. 빛깔만큼 맛도 고급스럽고, 향도 진하다. 무엇보다 생김새가 영지버섯을 닮은 단순한 반원 모양이라 씻고 손질하기가 쉽다.

한번 키워보고 싶다는 호기심이 일순 일어났다.

전화에 전화를 거듭한 끝에 마씨 절편 예순 개를 주문했다.

 

 

텃밭 농사도 낯선 작물과 자주 만나야 한다. 낯선 작물을 그의 습성에 맞게 기르는 일은 어렵지만 또한 즐겁기도 하다. 잘 아는 작물을 해마다 반복적으로 지으면 일상이 단조로워진다. 하지만 낯선 작물과의 만남은 사람을 긴장하게 한다. 적당한 긴장은 정신을 젊게 한다. 타성에 젖을 새가 없다. 낯선 작물 재배가 그래서 좋다. 그 작물에 대해 공부하고, 이웃과 정보를 주고받고 하다보면 일상이 단조로워질 수 없다.

 

 

비록 작은 텃밭 농사지만 그걸 지으면서 배우는 게 있다. 나의 방식을 작물에게 강요할 것이 아니라 작물의 생존 방식을 내가 따라준다는 점이다. 특히나 낯선 작물을 키울 때는 대충 아는 지식으로 그의 생을 간섭하기보다 오히려 손 안 대고 곁에서 쭉 지켜보는 방식도 좋은 재배법 중의 하나다. 작물을 재배하는 사람이 가장 경계해야할 것은 작물에 가하는 폭력이다. 자기식 대로 심고, 뽑고, 옮기고, 이도저도 마음에 안 든다고 갈아엎어버리는 일이다.

 

 

런 점에서 낯선 작물과의 만남은 배움을 자초하는 일이다.

토란이 그렇다. 토란은 태어나 한 번도 본 적 없는 작물이었다. 을지로에서 구입해온 날부터 토란 공부를 했다. 그리고 가급적 토란이 사는 방식을 지켜봐 줬다. 그해 토란은 무려 2미터를 넘기는 훤칠한 키로 성장했으며 무성한 줄기 사이로 오묘한 꽃까지 보여주었다. 작물 이상의 멋과 경이로움을 한껏 선물 받았다.

 

 

그때부터 해마다 낯선 작물을 만나고 있다. 방풍, 당귀, 둥근마, 생강, 강황, 멕시코 감자 히카마 등이다. 작물은 자기본성 대로 성장하지만 꾸준히 지켜보는 나도 성장시킨다.

마씨 절편이 늦어지는 걸 못 참는 것도 보라마를 모르는 나의 조바심 때문이다. 아열대 식물인 그에게 지금의 날씨는 싹이 나오기 적당하다. 늦는 데는 다 이유가 있겠다.

 

<교차로신문>2022년 5월 1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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