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잘 못 알고 심은 나무

권영상 2022. 7. 8. 10:06

 

잘 못 알고 심은 나무

권영상

 

 

창가에 중국단풍나무가 서 있다.

10여 년 전에 손가락 굵기 만한 묘목을 심었는데 지금은 지붕보다 더 높이 커 올랐다. 사방으로 가지가 알맞게 벋어 여름 한철 그늘이 좋다. 그늘 뿐 아니라 바람 불 때면 잘잘잘 나뭇잎 부딪는 소리에 귀가 즐겁다.

나는 이 낯선 중국단풍나무라는 묘목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안성에 조그만 집을 구하고 창밖에 산딸나무 한 그루 심어보자고 양재동 나무시장에 갔었다. 그때가 4월. 수많은 묘목들 중에서 ‘산딸나무’라고 쓰인 팻말을 보고 샀는데 2,3년 키워보고서야 알았다. 그게 잘못 산 묘목이라는 것을.

나뭇잎이 작고, 모양이 튤립꽃처럼 생겼다. 들판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예민한 나무였다. 사람들은 그게 산딸나무가 아니고 어쩌면 튤립나무일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그 얼마 후, 또 다른 사람들은 그게 튤립나무가 아니고 어쩌면 백합나무일거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나는 그것이 백합나무인 줄로 알았다. 근데 그 이름도 오래 가지 못했다. 언젠가 나무를 안다 하는 이가 보더니 그게 백합나무가 아니고 중국단풍나무라고 했다. 그 후, 나는 이 나무 사진을 찍어 나무와 풀이름을 알려주는 SNS에 올렸다. 중국단풍나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 후로 이 나무 이름에 대한 시비는 더 이상 없다.

 

 

그러니까 10여 년 전, 산딸나무로 잘못 알고 산 나무가 이 중국단풍나무다. 꽃이 없다. 작은 가지는 가시처럼 뾰족하다. 일 년 내내 봄에 핀 그 잎으로 살다가 늦은 가을 붉어지는 것 외엔 뜰안에 심을 관상수가 아니다. 나무는 성장속도가 빨랐다. 나무를 베고 다른 나무로 대체 하고 싶었지만 어, 어, 하는 사이 나무는 지붕 높이보다 더 커 올랐고, 가지는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울창하게 벋었다.

 

 

무엇보다 바람에 강했다. 뜰안에 선 나무들이 대개 북향으로 기울었는데 중국단풍나무만은 곧게 자란다. 튤립 모양으로 생긴 작은 잎들은 바람이 불 때면 사시나무처럼 바람과 싸우느라 나무에서 푸른 풀잎냄새가 날 정도다. 때로 그 그늘에 의자를 놓고 앉으면 머리가 맑아지고 더위에 지친 마음이 진정된다.

이젠 베어버릴 수 없는 뜰안의 나무가 되었다.

 

 

꼭 이 중국단풍나무 같은 친구의 아내가 있다. 친구는 걸핏하면 아내를 옆에 앉혀놓고 맞선 보던 시절의 이야기를 안주삼아 한다.

총각 시절 맞선을 보러 약속 장소에 나갔는데 나가 보니 맞선을 보러온 여성이 첫눈에 들더라는 거다. 결혼을 하고 싶다고 그 자리에서 청혼을 했는데 잘못 안 여성이었다. 그녀는 맞선을 보기로 한 이가 갑자기 몸이 아파 나올 수 없다는 걸 알리러 나온 친구였다. 그야말로 상대를 잘못 알고 청혼을 했는데 그녀가 지금의 이 달콤한 아내라고 했다.

자식도 셋 낳고, 다들 출가해 지금은 인생을 즐겁게 산다. 그림을 그리는 아내 덕에 자칭 ‘화가의 부군’이라는 호칭도 써가며 행복하다.

 

 

엄밀히 따져보면 결혼이란 서로 잘못 알고 만나 사는 일 아닌가. 덩치가 커 아량과 이해심이 있을 줄 알았는데 결혼해 보니 밴댕이소갈딱지더라느니, 가진 게 좀 있어 보였는데 맨주먹이더라느니, 곱슬머리라 인색할 줄 알았는데 한없이 너그럽더라느니.....

부부는 대부분 잘못 알고 만난 사이다. 중국단풍나무도 그늘이 좋다는 건 잘못 만난 뒤에 안 사실이다. 바람에 예민한 것도 그렇다. 이제는 그걸 사랑하며 산다.

 

<교차로신문> 2022년 7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