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의 여름방학 숙제
권영상
아이와 아빠가 숲길을 걸어온다. 아이는 한 손에 매미채를, 또 한 손에 채집통을 들고 있고, 아빠는 길옆 나무들을 살핀다. 아이의 여름방학 숙제를 도와주러 나온 모양이다.
“없잖아. 매미.”
아빠를 잔뜩 믿고 따라 나온 아이가 실망하는 투다.
“있을 거야.”
아빠는 연신 나무 둥치를 눈으로 훑으며 천천히 내 곁을 지나간다.
그들이 그렇게 살금살금 숲길을 따라가는 걸 보고 나는 씩 웃으며 돌아섰다.
그 옛날 우리들의 여름방학 숙제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때에도 지금처럼 곤충채집 숙제가 있었다.
시골에 살던 우리는 아빠와 함께 숲길에 나가는 게 아니라 순전히 혼자 나갔다. 혼자 힘으로 해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들 살기 바쁜 때였으니 자식에 마음 쓸 여유가 없었다. 매미채 대신 매미 우는 나무를 살금살금 타고 올라가 맨손으로 휙 잡아채는 손이 매미채였고, 채집통 대신 날개를 다치지 않게 요령껏 오무려 잡는 손이 채집통이었다.
나비 채집도 크게 다를 게 없었다. 미루나무 가지를 꺾어 끝부분을 동그랗게 묶는다. 그리고 거기에 거미줄을 붙여 나비를 잡고, 잠자리를 잡고, 벌을 잡았다.
제법 그럴싸한 방식이다.
그 시절에도 지금처럼 자식의 숙제를 부모가 대신해 주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개학이 되어 여름방학 숙제검사를 할 때 선생님이 누군가의 곤충채집 숙제를 집어들고 우리들에게 보여주었다. 매미 개미 지네 잠자리 딱정벌레 누에 달팽이까지 있었다. 우리는 그걸 보고 모두 웃었다. 곤충 채집이 아니라 생물 채집이었던 것이다.
방학 숙제로 가장 손쉬운 것이 있다. 식물채집이다. 농촌이었으니까 집을 나서면 온데가 다 풀밭이었다. 그걸 적당히 채집해 채집 공책에 붙여 납작하게 눌러두면 되었다. 식물은 그 공책 페이지가 모자랄 정도로 사방에 널널했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식물 이름이다. 그때가 남북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기초학문조차 미미했으니 식물 이름, 그것도 풀이름 따위에 관심이 있을 리 없었다. 그러니 식물 이름을 알아내는 방법은 무지렁이 부모님이나 동네 형들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때 나는 질경이를 채집해 붙여놓고 그 아래에 '뺨짱우'라고 적었다. 다들 그렇게 불렀다. 명아주 아래에는 '능쟁이'라 적었고, 달개비 아래에는 달그상다리라 적었다. 마디풀 아래에는 지금 생각해도 우스운 '나이롱풀'이라 적었다. 그렇게 적어놓는다 해도 실은 선생님도 그들 풀 이름을 알 리 없을 때였다.
그때, 그 여름방학 숙제로 꼭 끼어들어가는 게 있었다.
상표 수집과 우표 수집이다. 시골 학생들에게 있어 이 두 가지는 정말 난감한 숙제다. 상표를 수집하려면 소비능력이 있어야하고, 우표 수집 역시 편지 왕래 같은 문화 교류가 있어야 했다. 그게 안 되는 우리들은 우표 수집 숙제는 잡지에 나오는 우표 사진을 오려 붙이거나 친구들 우표와 교환하는 게 전부였다.
상표 수집을 위해 우리가 찾은 곳은 기차가 다니는 철길이었다.
당시의 기차는 기차 내에서 발생한 쓰레기를 달리는 기차 밖으로 쓸어 내버렸다. 거기에 묻어나오는 과자 갑은 우리들의 숙제를 유일하게 해결해 줬다.
그 무렵, 자아가 싹 트기 시작한 우리들은 유명 해수욕장으로 달려가는 그 기차를 보면 분노의 감자주먹을 날렸다. 어린 나이에도 불평등한 세상에 대한 불만을 그렇게 드러냈다.
<교차로신문>2022년 8월 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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