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초의 행복 0.3초의 행복 권영상 바람 분다 하더니 바람 분다. 마당가 조팝나무가 흔들리고 모과나무가 흔들린다. 흔들리는 건 그들만이 아니다. 건너편 산의 참나무들이 윙윙 바람 흉내를 내며 이리저리 몸을 흔든다. 바람 덕분에 기척 없이 살아가던 것들이 비로소 일어선다. 냉이꽃은 냉이꽃 대로 파르르 몸을 흔들며 일어서고, 나무는 나무대로 흔들흔들 몸을 흔들며 우주와 교신을 위해 잎을 피운다. 좀 힘들어도 풀이나 나무나 모두들 바람 불면 좋다. 다들 바람 속에서 흔들리며 살아온 것들이다. 그건 나도 그렇다. 조용할 대로 조용해진 마음보다 산란하게 마음이 흔들릴 때가 좋다. 그건 내가 살고 있다는 증거이니까. 나무든 사람이든 크든 작든 흔들려야 서 있는 자리가 굳건해진다. 바람 덕분에 처마 끝에 매달아 놓은 풍경이 찔끔.. 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2023.04.16
풍경과 나 풍경과 나 권영상 창문가에 풍경이 매달려 있다. 내가 바람인 것처럼 풍경을 한번 톡 건들어본다. 풍경이 쟁그랑, 운다. 또 한 번 톡 건들어본다. 풍경은 내가 바람인 줄 알고 쟁그랑 쟁그랑 운다. 해질 무렵, 창가에 선다. 풍경은, 이제는 내가 아주 바람인 줄 알고 내 손을 기다리고 있다. .. 내동시 참깨동시 2018.01.16
빛을 살려내는 부엉이등불 빛을 살려내는 부엉이등불 권영상 분청을 입힌 부엉이등불이 하나 생겼다. 며칠 전 모 문학지에서 <작가와의 만남> 인터뷰를 했었는데 그때 송시인으로부터 받은 선물이다. 눈 둘레엔 불빛이 새어나가도록 만든 수레바퀴 모양의 구멍이 있고, 몸통엔 깃털 문양의 촘촘히 구멍을 낸, .. 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2015.07.31
풍경소리 풍경소리 권영상 아침 자리에서 일어나면 내 몸이 베란다로 나가려는 충동을 느낀다. 잠들었던 정신을 깨워주는 깨끗하고 서늘한 공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커튼을 열고 조용히 문을 연다. 베란다에 놓인 화분들이 밤새 만들어낸 식전 공기가 훅 내 몸 안으로 밀려온다. 그와 동시에 내 .. 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2015.0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