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홍 4

아침에 물을 주다

아침에 물을 주다권영상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곧장 텃밭으로 나간다. 흙과 직면하여 사는 게 오랜 꿈이었다. 가뭄에 텃밭에 나가면 할 일이 있다. 작물에 물을 주는 일이다.밭에 토마토 20포기가 크고 있다. 안성에 내려온 지 11년째인데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토마토를 가꾸었다. 토마토에 대한 아련한 십 대의 기억이 있다. 어머니 병환 때문에 아버지는 돈이 될 만한, 당시의 특용작물인 토마토 농사를 지으셨다. 나를 앞세워 토마토 모종을 밭에 내고, 나를 앞세워 토마토가 익으면 읍내 가게에 내다팔던, 좀은 쓸쓸했던 과거가 이 나이 먹도록 내 몸에 상처처럼 남아있다.  토마토를 사주는 가게가 없으면 손수레를 끌고 10리길을 그냥 돌아왔다. 그때 아버지는 마른기침을 얼마나 하시던지. 토마토가 병원비 마련에 ..

나비를 기다리며

나비를 기다리며 권영상 그간 장마가 길었다. 폭염도 심했다. 그런 탓일까. 나비가 통 보이지 않는다. 한번 비 왔다 하면 그냥 비가 아니라 폭우가 쏟아졌고, 한번 더웠다 하면 폭염이 기승을 부렸다. 올여름은 유난했다. 그러니 나비 같이 약한 생명들이 견뎌내기 힘들었을지 모른다.올여름이 얼마나 유난했냐 하면 그 독하던 미국선녀벌레가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어느 때에 문득 사라졌다. 미국선녀벌레란 2009년에 우리나라에 유입 된 해충으로 나무들 어린 가지에 하얗게 내린 눈처럼 달라붙어 즙을 빠는 벌레다. 알에서 깨어나 조금 자라면 선녀같이 하얀 날개로 톡톡 날아다니고, 이게 성충이 되면 탈피하여 작은 매미처럼 온갖 나무에 촘촘히 달라붙어 수액을 빤다. 이들 때문에 농촌이 너남없이 몸살을 앓는 형편이다. 농약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