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룽나무 3

오리나무가 붉게 꽃 피다

오리나무가 붉게 꽃 피다 권영상 남부순환로 앞에 서면 내 눈이 건너편 산으로 간다. 신호를 기다리며 먼데 산을 바라보는 일은 좋다. 특히 이맘쯤 북향의 산비탈은 더욱 좋다. 거기엔 남향보다 북향을 좋아하는 나무숲이 있기 때문이다. 생강나무, 진달래, 귀룽나무, 오리나무 등이 그들이다. 이들 나무는 대개의 나무들과 달리 남향을 꺼린다. 남향엔 무제한으로 받을 수 있는 햇빛이 있지만 햇빛 때문에 수분이 머무는 시간이 짧은 게 문제다. 그런 탓에 이들 나무는 햇빛보다는 물기를 머금고 있는 서늘한 북향을 가려 산다. 요사이 산을 바라보면 산빛이 붉다. 정확히 말하면 자주에 가까운 붉은빛이다. 오리나무가 개화하기 때문이다. 오리나무도 꽃 피냐 하겠지만 오리나무도 꽃 핀다. 말은 쉽게 하지만 나도 오리나무꽃은 보지..

나도 꽃처럼 한없이 피어보고 싶다

나도 꽃처럼 한없이 피어보고 싶다 권영상 봄비 그친 뒤, 창문을 연다. 건너편 산이 봄물이 들어 연둣빛으로 우련하다. 아파트 마당은 봄비 끝에 꽃이 지천이다. 남향에 선 목련은 개화가 한창이고, 북향에 선 목련은 꽃부리가 터져나기 직전이다. 핀 지 사나흘 된 살구꽃은 절반이 지고 있고, 홍매화는 건재하다. 긴 겨울의 일상은 이 창 너머를 바라보며 시작 되었다. 마음 놓고 세상을 나서지 못하는 시절이고 보면 늘 거실 창문 앞에 서서 다가올 봄을 기다렸다. 그때 제일 먼저 내게 봄을 전해준 건 건너편 산의 오리나무 꽃이다. 오리나무에 웬 꽃이냐 할 테지만 눈 녹고 매운 바람 슬그머니 물러서면 오리나무는 긴 꼬리 모양의 꽃을 주렁주렁 매단다. 가까이서 보면 모르지만 먼데서 보면 산은 오리나무 꽃으로 은은히 붉..

가을비 내린 아침

가을비 내린 아침 권영상 간밤 가을비가 왔다.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연다. 마당에 그 좋던 느팃잎이 다 떨어졌다. 아침을 챙겨먹고 아파트 뒤쪽 후문을 나섰다.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느티나무 숲이 황량하다. 여기라고 다를 게 없다. 번개와 천둥을 거느리고 온 가을비가 느팃잎을 모조리 떨어뜨렸다. 한길가에 줄지어 선 은행나무 또한 길 위에 노란 잎을 수북수북 쏟아냈다. 그 요란하던 가을의 작별도 이렇게 끝났다. 가을은 고운 햇빛과 바람이 만들어내는 낙엽들의 작별 축제를 싫도록 누리게 한 뒤 그 절정의 고비에서 비를 안겼다. 이제 나뭇가지 끝에 매달린 나뭇잎들은 모두 이 지상으로 다시 돌아왔다. 축제는 끝났다. 바람과 함께 흩어지던 낙엽의 어수선함이며, 때로는 휘황찬란하던 몸짓이며, 마른 가지를 스치던 낙엽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