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나무 4

감잎 가을 선물

감잎 가을 선물 권영상 아내가 참여한 미술전이 끝났다. 작품을 회수해 온 아내가 선물이라며 전시작품 도록을 내밀었다. 전시장이 코앞인 데도 못 가봤다. 예상치 못한 독감에 걸렸다. 날마다 아침에는 8시에 산에 오르고, 밤에는 9시에 걷기 길에 올라 한 시간을 걷는다. 딴엔 그걸 커다란 운동이라 믿어선지 병원에 안 가고 지금 닷새를 버티고 있는 중이다. “잘 찾아봐. 당신에게 줄 가을 선물을 숨겨놨어!” 그제야 나는 책갈피에 삐죽 나온 가을 빛깔을 쏙 잡아당겼다. 빨갛게 익은 감잎 두 장이 나왔다. 순간 예술의 전당 마당에 서 있는 감나무들이 떠올랐고, 이 감잎은 그들의 가을 분신임을 알았다. 들여다 볼수록 가을이 곱다. 감잎을 만져보는 손끝이 촉촉하다. 가을물이 손끝에 묻어날 것만 같다. 감잎이 만들어내..

어린 대봉시나무를 심으며

어린 대봉시나무를 심으며 권영상 안성으로 가는 길에 나무시장에 들렀다. 지난해 겨울, 뜰안 소나무 없앤 자리가 비어있다. 나무가 비면 빈 채로 그냥 두고 보는 것도 좋다. 나무가 있을 때 못 보던, 그 너머의 세상을 볼 수 있는 이점도 있다. 그렇기는 해도 울타리 바깥과 안의 경계가 사라져 허전하다. “그 자리에 대봉시나무 심어요.” 아내가 요지부동 못하게 대봉시나무로 못을 박았다. 대봉시가 붉게 익어가는 뜰안의 가을 풍경은 보기에도 좋다. 빨간 감잎 단풍도 좋지만 주렁주렁 익어가는 감을 볼 때면 아, 가을이다! 하는 가을 정취를 느낄 수 있다. 기왕 심을 거면 큰 나무로 심자는 거다. 우리도 점점 나이 먹어 가는데 어린 나무를 심어 언제 감을 먹겠냐는 그 말엔 나도 동감이었다. 솔직히 10년 20년을 ..

오래된 아파트의 뜰 마당

오래된 아파트의 뜰 마당 권영상 아침 거실 문을 연다. 아파트 뜰 마당 모과나무에서 익어가는 노란 모과가 성큼 눈에 들어온다. 모과 향기로 뜰 마당이 가득차 오르는 듯하다. 모과나무는 4층 높이로 키가 크다. 다른 나무들은 다들 잎을 떨어뜨리는데 모과나무만은 유별나게 초록이다. 진한 초록나무 숲에 노란 모과라니! 넋을 잃고 한참을 내다본다. 가끔 창문 앞에 설 때면 참외밭의 참외를 찾아 세듯 모과들을 센다. 쉰 개도 더 넘는 그걸 눈대중으로 다 셀 쯤이면 입안이 환해진다. 모과를 깨물다 놓은 것처럼 앞니가 새콤해진다. 그런 느낌이 밀려와 눈을 찡그린다. 달고 새콤한 한 모금 침이 돈다. 오래된 아파트엔 좋은 점이 많다. 새로 지은 고층 아파트와 달리 사람을 압도하는 위압감이 없다. 뭐니 뭐니 해도 마당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