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오래된 아파트의 뜰 마당

권영상 2020. 11. 15. 10:11

 

오래된 아파트의 뜰 마당

권영상

 

 

아침 거실 문을 연다. 아파트 뜰 마당 모과나무에서 익어가는 노란 모과가 성큼 눈에 들어온다. 모과 향기로 뜰 마당이 가득차 오르는 듯하다. 모과나무는 4층 높이로 키가 크다. 다른 나무들은 다들 잎을 떨어뜨리는데 모과나무만은 유별나게 초록이다. 진한 초록나무 숲에 노란 모과라니! 넋을 잃고 한참을 내다본다.

가끔 창문 앞에 설 때면 참외밭의 참외를 찾아 세듯 모과들을 센다. 쉰 개도 더 넘는 그걸 눈대중으로 다 셀 쯤이면 입안이 환해진다. 모과를 깨물다 놓은 것처럼 앞니가 새콤해진다. 그런 느낌이 밀려와 눈을 찡그린다. 달고 새콤한 한 모금 침이 돈다.

 

 

오래된 아파트엔 좋은 점이 많다.

새로 지은 고층 아파트와 달리 사람을 압도하는 위압감이 없다. 뭐니 뭐니 해도 마당이 넓다. 마당이 넓으니 오래된 초록숲의 나무가 많다. 나무들은 대개 고향을 떠오르게 하는, 쉽게 말해 재래식 나무들이다. 살구나무, 모과나무, 목련, 매화나무, 감나무, 정자나무를 연상케 하는 느티나무들이다. 건물이 주는 위압감 대신 대부분 마음을 편안하게 하거나 정서적 쉼터 역할을 하는 나무들이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도 알맞게 오래 됐다. 늘 입어온 옷처럼 집이 내 몸에 맞다. 나무들 또한 고향을 지켜주는 친구처럼 늘 같은 자리에 있어주어 고맙다.

올해는 특히 홍매실이 지난해에 그랬듯이 많이 열렸다. 홍매는 꽃 피는 시기가 살구나무 개화기와 같다. 봄눈을 맞으며 살구꽃이 필 때면 홍매나무에도 홍매꽃이 핀다. 보통 매화가 희거나 분홍이라면 홍매화는 검정빛이 도는 붉은 빛이다. 차라리 흑매라고 불러도 좋을 만치 꽃 핀 홍매나무는 도도하다.

살구꽃이 여염집 울안을 터전으로 살아간다면 홍매는 대갓집이나 산사의 넓은 마당을 터전으로 한다. 그들은 머무는 곳이 달라도 열매를 익혀 떨어뜨릴 때에 보면 그들 나무의 여름이 온 걸 금방 안다. 살구가 떨어질 때면 홍매나무 아래 홍매실도 떨어진다. 살구가 통통하고 노랗다면 홍매실은 살구보다야 작지만 붉다.

 

 

지금 아파트 뜰 마당엔 모과 말고도 감이 한창이다. 한 그루는 대봉시나무고 한 나무는 반시(납작감)이다. 얼마나 많이 열었는지 가지가 찢어질까봐 나무 지주로 가지를 받쳐놓았다. 감잎 단풍도 좋지만 주렁주렁 달린 붉은 감은 말할 것도 없는 고향의 얼굴이다. 나는 가끔 집을 나서다가도 뜰 가득 익는 붉을 감을 볼 때면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곤 한다. 거기엔 어머니가 들어있고, 누나와 감을 주우러 다니던 내가, 길다란 장대 끝으로 감을 따시던 지금은 안 계신 외삼촌이 떠오른다.

 

 

해안이 가까운 고향 마을엔 집집마다 감나무 한 그루쯤은 다 있었다. 그게 높다랗게 자라 올라 새파란 하늘에 붉은 감을 주렁주렁 매달 때면 시골에 살던 우리들조차 비로소 아! 하고 가을을 느끼곤 했다. 그때 머리 위의 감 하나를 따 으썩 깨물어도 떫지 않다면 바로 그때가 감이 맛이 들어가는 깊은 가을이다.

 

 

아파트 마당의 감과 모과는 겨울이 가까이 올 때까지 그대로 둔다. 그 무렵까지 향그런 모과 향기와 붉은 감나무 풍경을 올해도 누릴 수 있겠다. 그 풍경은 마치 오래된 구우에게서 한통의 전화를 받고 하루 종일 사람의 향수를 느끼던 것처럼 뜰 마당에서 느낄 수 있는 그윽한 고향의 향기와 같다. 해마다 그 자리에서 변함없이 그 풍경을 보여주는 나무들이 있어 집으로 돌아와도 어머니가 있는 것처럼 푸근하다.

 

<교차로신문> 2020년 11월 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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