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 연재 칼럼

아내의 구두를 닦으며

권영상 2016. 7. 23. 15:29

아내의 구두를 닦으며

권영상


 



다들 출근하고 나만 남았다. 11시 모임에 가기 위해 나는 좀 여유있게 준비를 하고 신발장을 열었다. 내 구두가 뿌우옇다. 구둣솔을 집어 들었다. 대충 솔질을 하고 신발장을 닫는데 신발 하나가 떨어졌다. 아내 구두다. 나도 모르게 발길로 툭 찼다. 직장 일이 힘드네 어쩌네 하며 매양 투덜대는 아내가 밉상스러웠다. 엊저녁은 멀지 않은 곳에 나가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식사하는 내내 연실 내게 타박이었다. 왜 좀 부드럽게 대해주지 못 하느냐, 힘들다할 때 왜 좀 좋은 말로 위로해 주지 못하느냐, 남편 하는 일이 뭐냐며 불평이었다.


“뭘 어떻게 위로해 주어야 하는데?”

나는 그 말을 되물었다. 오랫동안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열심히 일만하는 게 나는 나의 직분이라 믿고 그렇게 살았다. 그런 점에서 나는 내 역할에 충실했다고 생각하는데, 요즘 들어서는 자꾸 내 직분 밖의 위로를 해달라느니 스트레스를 풀어달라고 한다. 그냥 밥 먹고 술 한 잔 마시면 그런 게 다 풀린다고 여겨온 나와 아내는 또 다른가 보다. 괜히 그런 자리를 만들어 타박만 들은 것 같아 내 기분도 좋지 않았다. 지난밤의 감정이 그대로 남았던지 아내는 좋지 않은 얼굴로 아침 출근을 했다. 



나는 툭 걷어찬 아내의 구두를 집어 들었다. 손에 잡히는 느낌이 이상했다. 오랜, 힘들고 고단한 여행 중에 있는 여행자의 신발처럼 가죽에 힘이 없었다. 신발장 속에 밀어넣으려다 말고 신발장 위에 내려놓았다. 반듯이 서지 못하고 자꾸 모로 쓰러진다.  

 “무슨 일이 그렇게 많은지, 당신 근무할 때보다 더 힘들다구.”

이제 생각하면 아내는 늘 그런 말을 했다.


나는 현관문을 닫고 웃옷을 벗었다. 이 구두라도 좀 닦아주고 가야할 것 같았다. 시계를 보니 10여분 여유가 있었다. 나는 현관바닥에 의자를 놓고 앉아 구두약을 묻혀 솔질을 했다. 그때 언젠가 아내가 닦던 검정 헝겊이 떠올랐다. 신발장 서랍을 열었다. 검정 헝겊을 집어 들고 보니 내가 신던 구멍 뚫린 양말이다. 아내는 이 구멍 뚫린 양말로 구두를 닦아 신고 다녔다. 

캐주얼 구두를 신느라 나는 구두같은 건 안 닦는다고 사람들에게 큰소리쳤지만 오늘 내 먼지 묻은 구두를 보니 아내의 손길이 있었다. 나보다 늦게 잠자리에 드는 아내는 그 사이 내가 벗어던진 헌 양말로 집안 식구들의 구두를 말끔히 닦았다.



한 켤레만 닦고 나가리라 했는데, 식구 수 대로 모두 꺼내어 닦기 시작했다. 처음엔 구두약이 손에 묻을까 조심했지만 어느새 손안에 구두를 틀어쥐고 본격적으로 닦아나갔다. 여유있던 10분이 벌써 다 지났다. 시간에 딱 맞추어가는 일도 중요할 테지만 아내의 구두를 닦는 일도 소중한 일 같았다. 손에 든 아내의 구두를 본다. 마치 아내와 가장 낮은 자리에서 만나는 기분이다. 아내의 힘든 마음을 어루만지듯 구두약을 바르고 부드럽게 닦는다. 아내는 이 구두를 신고 ‘내가 근무할 때보다 더 힘들다’는 직장을 다닌다. 발길로 구두를 차던 마음이 풀어지고 미안한 마음이 든다.


<교차로신문 2014년 5월 19일자>







'오동나무 연재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5층 할아버지  (0) 2016.07.23
생땅은 오염되지 않은 귀한 땅   (0) 2016.01.14
제비가 돌아왔다   (0) 2016.01.14
여린 꽃잎들의 가혹한 희생   (0) 2016.01.11
망원렌즈 속에 숨겨진 생의 비밀  (0) 2016.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