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 연재 칼럼

생땅은 오염되지 않은 귀한 땅

권영상 2016. 1. 14. 17:56

생땅은 오염되지 않은 귀한 땅

권영상

 

 

 

새로 일군 밭에 강낭콩을 심었다. 강낭콩이 올라오는 걸 보고 서울에 갔다가 일주일만에 다시 안성으로 내려왔다. 그 사이 강낭콩 속잎이 활짝 피어있었다. 강낭콩 이랑을 살피던 나는 적잖이 실망했다. 강낭콩이 나오지 않은 곳이 반도 더 되었다. 아예 비었거나 겨우 하나만 나온 것이 대부분이었다.

 

 

 

작은 밭이라 강낭콩을 심어놓고 가끔 물을 주었다. 또 때를 맞추어 하늘도 적잖이 비를 내려주었다. 거기다 싹 틔우기 쉬우라고 씨앗까지 불려서 심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을 보이다니! 땅은 거짓말을 모른다는 말이 헛말 같았다. 나는 빈 자리를 헤쳐볼 요량으로 호미를 찾아들고 강낭콩 이랑에 앉았다.

호미 끝이 들어가지 않을 만큼 땅이 딱딱하다. 다른 곳도 역시 그렇다. 그러고 보니 이 밭이 생땅을 일군 밭이다. 생땅을 깎아 집을 짓고 남은 자리를 올봄에 처음으로 만든 밭이다. 그런 까닭에 세 번이나 흙을 뒤집어 주었고, 마른 풀거름과 재거름을 했다. 물도 때맞추어 주었다. 그랬으니 이 밭이 오래 지은 농가의 기름진 텃밭쯤으로 나는 착각했다. 말이 밭이었지 비 그친 뒤의 바짝 말라버린 길바닥 같이 땅이 굳어있었다.

 

 

 

“생땅은 오염되지 않은 귀한 땅이네. 농사가 안 되더라도 천천히 지력을 올리게.”
농사를 짓는 고향 친구의 말이 이제야 떠올랐다. 그 친구의 말을 나는 잊고 있었다. 댓바람에 큰 걸 얻겠다고 바둥거린 셈이었다. 어떻게 첫술에 배부를까.
나는 괭이로 빈자리를 쿡쿡 울려준 뒤 호미로 김을 매어나갔다. 이랑에서 강낭콩과 마주 앉고보니 그제야 살아나온 강낭콩들의 눈물겨운 악전고투가 느껴졌다. 그들은 온힘을 다해 연한 떡잎으로 생땅을 떠뒹겨 올렸을 것이다. 그러니까 나오지 못한 강낭콩들은 이 단단한 흙을 밀어젖힐 힘이 부족했던 거였다.

 

 

 

 

강낭콩이 나오지 못한 자리를 가만히 헤쳐보았다. 씨앗이 죽은 게 아니었다. 퉁퉁 불은 기형의 몸으로 웅크리고 있었다. ‘내가 욕심을 부린 게 미안하구나!’, ‘그래 미안하다.’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이 입에서 튀어나왔다. 그러면서 파랗게 돋아나온 강낭콩들에겐 염치없긴 하지만 ‘고맙구나!’, ‘기특하구나’, ‘나오느라 얼마나 힘들었겠느냐.’ 그 말을 연실해주며 김을 맸다. 생땅이 주는 선물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날마다 생땅같이 오염 되지않은 선물을 받으며 산다. 새벽마다 누군가 배달해주는 ‘시간’이다. 혹시 누군가는 일확천금을 버는데 이 시간을 이용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그건 깨끗한 시간을 오염시키는 일이다. 시간을 돈으로 오염시켜선 안 된다. 생땅이 귀한 선물이듯 새벽마다 받는 깨끗한 시간도 귀한 선물이다. 그걸 알면서도 시간을 받아들면 번다한 눈앞의 이익에 사로잡혀 시간없다, 시간없다며 허둥대는 게 우리들이다. 

 

 

 

30여년 간 글을 써오며 70여권의 책을 냈다. 그러느라 가정을 돌보는 일에 소홀했다. 지금 와 생각해 보면 가정만큼 소중한 선물이 없다. 생땅의 지력을 천천히 올려야하듯 가정의 행복도 천천히 지속적으로 가꾸어야 함을 잊었다. 생땅은 아직 한번도 작물을 키워본 경험이 없는 순수한 땅이다. 그 순수를 가꾸는 일이 내 손에 달렸음을 안다.

 

 

<교차로 신문> 2014년 5월 2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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