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가 돌아왔다
권영상
간밤에 덮은 이불을 접어들고 마당에 나와 빨래 건조대에 말린다. 한 사나흘 서울에 가 있다가 안성에 내려올 때면 으레 이부자리부터 볕에 내놓는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마른 볕에 이불을 내다 너는 일이 좋다. 마음이 부유해지는 느낌이다.
비에 무너진 고추이랑을 세워주고, 파씨 사이로 돋은 풀을 뽑고 방으로 들어오다가 건조대에 널어놓은 이불에 얼굴을 대어본다. 따스하다. 이불솜 안에 햇볕을 가득 저금해놓은 것처럼 마음이 넉넉해진다. 무엇보다 밤에 햇볕을 잔뜩 머금은 이불을 덮고 잔다는 기쁨이 있다. 거추장스런 잠옷 다 벗고 하나 남은 속옷만 걸치고 이불을 덮으면 마치 우주와 내 몸이 직접 만나는 기분이 든다.
마른 이불을 꼭 쥐어본다. 이불 속에 함뿍 들어가 숨은 햇볕이 내 손에 한 움큼 쥐어진다. 손이 보송보송해진다. 이참에 이불 밑에 까는 매트까지 들고 나왔다. 매트를 건조대 옆에 비스듬히 세우려는데 어디서 듣던 소리가 난다.
쳐다보니 제비다. 제비들이 마당 위를 날며 지저귄다. 나는 매트를 놓고 이 뜻밖의 광경에 놀라 그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젊은 사내아이들처럼 목소리가 크고 기운차다.
“여, 이거 오랜만이구나!”
나도 모르게 옛 친구를 대하듯 반갑게 맞았다. 정말 얼마나 오랜만에 보는 제비인가. 언젠가 제주 애월리 바닷가에서 한 번 본 적이 있다. 그 후 경주 양동마을에서 한번 본 적이 있기는 하지만 내 머릿속에는 이제 우리 땅엔 제비가 없는 걸로 돼 있었다.
그랬는데, 제비라니! 예전, 울밑에 아버지가 심어놓으신 호박씨가 나오고, 마당 볍씨, 독의 볍씨가 통통하게 불을 무렵이면 제비가 돌아와 마당가 빨랫줄에서 요란하게 울었다.
지지뱃배 지지뱃배, 지지뱃배.......
그것은 삼동을 무사히 견뎌낸 농가 사람들을 위한 축복의 연가였다. 다시 봄을 맞은 부활의 노래이기도 했다. 그러던 때에 어머니는 안방 문을 활짝 열어놓고 아버지의 춘추복 두루마기에 동정을 다셨고, 아버지는 새끼 밴 암소를 돌보셨다.
그때의 제비는 민중들에게 친근한 새였다. 배고픈 민중들에게 ‘박씨’라는 꿈을 심어주며 위로해온 새였다. 제비가 반가운 건 그 때문이다. 봄이 오면 뭔가 달라질 거라는 기대감으로 우리의 아버지와 어머니들은 남녘 하늘을 바라보며 돌아오지 않는 제비를 기다렸다. 그런 긴 기다림 끝에서 문득 만나게 되는 제비는 그 얼마나 반갑고 고귀한 손님이었을까.
그런데 우리는 이런저런 이유로 오랫동안 제비를 잃어버리고 살았다. 아무리 힘든 겨울이라도 이듬해 봄에 제비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와 지금의 궁핍보다 더 나은 배부름의 봄이 올 거라는 ‘박씨의 꿈’을 잃어버리고 살았다. 그 행복한 기다림과 기대와 꿈조차 다 사라진 지금, 우리는 가야할 길을 몰라 마냥 서성이고 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제비가 내려앉을 줄 하나 없다. 이렇게 반가운 친구를 맞고도 정작 나는 그를 맞을 아무 준비도 못했다. 내년 봄을 위해서라도 빨랫줄을 맬 든든한 나무를 하나 키워야겠다. 그래서는 이불도 내다널고, 제비도 날아와 앉게 해야겠다.
<교차로신문>2014년 5월1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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