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감자를 심었습니다
권영상
아침에 씨감자 눈을 땄습니다.
예전 고향집에서 어머니 하시던 걸 보면 씨감자 눈 따는 칼은 아궁이에서 나온 재로 소독을 했지요. 갑자기 그 생각이 나 가스라이터 불로 칼날 소독을 했지요.
씨감자는 강릉에 사시는 형수님께 부탁을 드렸습니다. 감자농사를 지으시는 형수님께선 대관령 왕산 종묘에서 감자씨를 구입하셨답니다. 거기 큰사위가 사니까요. 염치없지만 벌써 3년째 씨감자를 얻어다 심습니다. 눈을 따고 세어보니 씨눈 142개를 얻었습니다.
감자씨 물이 찌는 동안 텃밭에 나가 골을 켰습니다. 작년과 달리 올해는 멀칭을 할 생각입니다. 씨감자를 얻어온 지 벌써 나흘, 감자씨에서 푸른 눈이 끔벅끔벅 돋습니다. 이대로 다음 주까지 그냥 둘 수가 없어 강릉에 전화를 했더니 아직 때가 아니라는 거죠. 눈이 오고 있답니다. 하긴 여기 안성도 간밤에 하얗도록 서리가 내렸습니다. 근데 어쩌지요. 다음 주엔 제주도 봄여행을 하기로 했는데. 거기 갔다 오면 4월입니다.
“멀칭을 하지 뭐.”
그래서 할 수 없이 멀칭을 하게 되었습니다.
괭이로 밭이랑을 깊게 팠습니다. 흙빛이 좋습니다. 지난주에 내려와 마른 풀과 프렌치 메리골드며 백일홍 대궁이를 모아 태웠지요. 꽃을 많이 심은 덕분에 재도 많이 나왔습니다. 축분비료 두 부대와 같이 손바닥만한 밭에 골고루 펴고 땅을 뒤집어주었습니다. 그 탓인지 흙빛이 거무스레하네요. 한 움큼 쥐고 코에 대어봅니다. 풋풋합니다.
고랑을 타고, 집에서 가져온 말린 과일 껍질을 외양간 거름 삼아 뿌렸지요. 모아두었던 것을 이럴 때에 요긴하게 씁니다. 그리고는 15센티 간격으로 눈이 위로 올라오게 씨감자를 놓았지요. 다 놓고 세어보니 한 고랑에 34개. 34개에 여섯 고랑이면 씨감자 눈 200 여개가 필요합니다. 개수를 맞출 수 없어 다시 간격을 20센티로 늘여 놓았습니다.
수도에 호스를 연결해 씨감자 넣은 고랑에 물을 주었습니다. 고랑이 흠뻑 젖도록 주었네요. 이대로 멀칭을 하면 이제 다시 물 구경을 할 수 없는 게 씨감자입니다. 고랑에 물이 잦아들 때쯤 괭이질을 하여 감자씨를 덮어나갔습니다. 오랜만에 해보는 제대로 된 일이라 등허리에서 땀이 납니다. 온몸이 홧홧해 겉옷을 하나 벗었습니다. 일기예보엔 오후부터 기온이 떨어진다 하여 서둘렀는데 오히려 푸근합니다.
감자 그릇에 감자씨 십여 개가 남았네요. 감자씨를 잘 계산한 탓이겠지요. 갑자기 점심 걱정이 듭니다. 나는 감자 골에서 나온 대파 두 개를 손질했습니다. 밭에서 한겨울을 난 녀석이라 파빛이 요란하게 파랗습니다. 남은 씨감자를 깎아넣은 밥과 시금치에 파를 썰어 넣고 된장국을 끓일 생각입니다.
쟁기를 다 정리하고 마당 의자에 털썩 몸을 내려놓습니다. 오늘 하루 큰일을 했습니다. 어젯밤 달을 보니 오늘이 2월 열엿새. 유월 하지가 올 때까지 감자는 내가 오늘 한 일을 이어받아 쉼 없이 땅속에서 큰일을 맡아할 테지요.
이제 곧이어 4월이 오겠지요. 4월이 오면 온상에서 크는 상추며 쑥갓, 꽃모종을 하고, 지난해에 알뿌리를 불려놓은 달리아를 심어야지요. 무엇보다 마당에 심어놓은 꽃복숭아나무 꽃을 볼 수 있을 것 같아 자꾸 4월이 기다려지네요. 꽃망울이 제법 통통합니다. 그게 피면 뜰에 나와 소주라도 한잔 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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