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씨앗 온상을 만들며

권영상 2016. 3. 28. 12:38

씨앗 온상을 만들며

권영상





대지에 봄기운이 감돕니다. 남녘에 유채꽃이 피고 벚꽃이 핀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마음이 달뜹니다. 꽃이 핀다고 내 일상이 뭐 크게 달라질 것도 없으면서 봄을 기다립니다. 이게 봄의 마음인가 봅니다. 괜히 다급해집니다.

상추며 꽃모종 시기를 놓칠까봐 안성에 내려왔습니다. 흙에서 뿜어내는 봄기운이 내 몸을 잡아당기는 듯 합니다. 오자마자 텃밭에다 온상부터 만들었습니다. 씨앗가게에서 사온 상추, 쑥갓 등속과 지난해에 받아둔 꽃씨를 뿌렸습니다. 물뿌리개로 물을 흠뻑 주고 비닐을 덮고나자 마음이 놓입니다.




작년에도 씨앗 온상을 했습니다.

그런데 실패한 일이 많았습니다. 씨앗을 넣고 한 달이 지나도록 발아가 되지 않는 씨앗들이 있었지요. 씨앗이야 그깟쯤 밭에 넣으면 모두 나오는 줄 알았지요. 자식을 낳아 길러보기 전에도 제 생각은 그랬지요. 낳아서 먹여주고 공부 시키면 열 자식 모두 부모가 원하는 대로 똑 같이 커주는 줄 알았지요. 그런데 자식이 그렇지 않듯 그 먼지만한 씨앗도 우리가 미처 모르는 제 성질이 다 있었습니다. 지난해 씨앗 온상에서 잃은 샐비어와 일일초, 작약과 창포, 붓꽃씨앗이 그들입니다.




제일 먼저 발아가 된 건 상추, 쑥갓, 봉숭아, 프렌치 메리골드였지요. 같은 채소류이면서도 토마토는 또 좀 달랐어요. 두 주일이 지나고 나서야 느릿느릿 나왔습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토마토나 오이 호박은 다른 씨앗에 비해 빛을 싫어하는 혐광성 종자입니다. 그러니 이들은 다른 씨앗에 비해 좀 깊게 묻거나 종이로 빛을 가려주어야 한다는 정보를 몰랐습니다.




토마토는 늦게라도 싹이 나왔지만 아예 안 나온 녀석들이 있지요. 샐비어, 일일초, 작약과 창포입니다. 샐비어 씨앗은 동네 초등학교 꽃밭에서 귀하게 구했고, 일일초는 누님이 키우는 화분에서 받아주신 겁니다. 작약 씨앗은 강릉의 허균 생가터 꽃밭에 떨어진 걸 열 알 정도 주워온 거였지요. 씨앗이 굵고 탐나고, 꽃이 곱잖아요. 그때 그 자리에서 까만 창포 씨앗도 여러 톨 따왔댔습니다.




근데 그들은 봄이 가고 여름이 가고 해가 바뀌어도 끝내 발아하지 않았습니다. 인터넷에서 그들 정보를 알아냈지요. 샐비어와 일일초는 대표적인 고온에서 발아하는 씨앗입니다. 그들에게 저온에서 발아하는 상추씨랑 똑 같은 환경을 만들어주었으니 발아할 리가 없었지요.

더욱 나를 놀라게 한 건 작약과 창포, 붓꽃 씨앗입니다. 이들은 너무나 똑별난 녀석들입니다. 노지에서 몸소 혹독한 추위를 겪어야 겨울이 끝날 줄 알고 잠에서 깨어난다는 거지요. 늦가을에 이들 씨앗을 받아 방에 두었으니 마냥 쿨쿨 잠자고 있을 게 뻔합니다. 그런 씨앗을 보고 봄이 왔다고 소리친단들 내 말을 들을까요. 거짓말 마라 할 테지요. 참 오묘합니다. 씨앗 한톨 속에 그런 진실과 정직이 숨어있다니요.




암만 작은 생명이어도 생명은 저마다 다른 유전자를 지니고 있습니다. 똑 같은 환경을 만들어놓고 똑 같이 발아하기를 기다려온 나의 무지가 부끄러웠습니다. 일찍 깨우치는 아이가 있고, 늦게 깨우치는 아이가 있고, 교실이라는 어두운 공간에서 특성을 발휘하는 아이가 있고, 열린 공간에서 햇빛을 받아야 자신의 우수성을 이끌어내는 아이가 있습니다.

지난해엔 씨앗 온상을 하며 참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내가 잠시 어리석었던 건 내남없이 똑 같은 책으로 똑 같이 배운 국정교과서 탓이 아니었나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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