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나가 먹자 세대

권영상 2016. 2. 4. 14:30

나가 먹자 세대

권영상

    


 


아파트 앞에 불철주야음식점이 있다. 불철주야 불야성이다. 정문 가까이에 있어 차를 몰고 집으로올 때는 번잡하다. 가게가 여럿이라 그런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딱 불철주야 하나 밖에 없다. 그런데도 불철주야는 찾아오는 승용차들로 붐빈다. 이런 불경기에 붐비는 모습 보는 것만도 행복이라면 행복이다.

붐빈다고 내가 보기에 메뉴가 뛰어난 것도 아니다. 묵은지 반찬이 주 메뉴다. 그외 달걀부침, 그냥 주는 숭늉이 전부다. 반찬도 간촐하고, 서비스도 간소하다. 그런데 왜 불철주야일까. 목이 좋아서? 그도 아니다. 셀 수도 없이 많은 음식점들이 그 자리에 들어오고 나가고를 반복했다.





그 끝에 들어온 음식점이 그 묵은지 불철주야다. 벌써 10년이 넘었다. 안 가 볼 수 없지 않은가. 동네 가게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우리는 약간의 기대를 가지고 갔다. 그러나 상상했던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그 수준이었다. 근데 놀라운 점이 있었다. 가족 단위라는 거다. 할머니, 할아버지부터 나이 어린 손자들까지. 더욱 놀라운 건 그런 풍경이 아침시간에도 여전히 벌어진다는 점이다.




오랜 뒤 우리가 내린 판단이 있었다.

집에서의 가정식사가 외부로 옮겨졌다, 였다. 자신의 집 식탁에 둘러앉아 가족이 함께 해야하는 식사가 음식점으로 이동했다는 사실이다. 거기서 아침 식사를 한 후 출근을 하고, 학교를 가고, 각자 자신의 길을 간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그러니까 그 묵은지 메뉴는 여러 세대의 입맛을 커버하는 부담없는 음식이었고, 부담없는 가격이었다. 모르긴 해도 맞벌이부부거나 아침 식사차림을 감당할 사람이 없는 집일지도 모른다.




동남아 여행을 해본 사람이라면 이런 풍경을 가끔 보았을 것이다. 길거리에서 아침 식사를 때우는 그들의 식문화를. 그걸 보면서 누구나 우리의 아침식사 문제를 고민해 봤을 것이다. 아침밥보다 아침잠이 부족한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밥과 국과 반찬을 동반하는 우리의 음식문화는 버거운 게 사실이다.




며칠 전 우스갯소리를 하던 친구가 생각난다. 그의 말에 의하면 우리나라엔 두 개의 세대가 있는데 그 하나가 군불세대라는 거다. 군불을 때어보았거나 군불이라는 말을 들으면 왠지 따뜻한 시골정서를 느낄 줄 아는 세대로 집밥을 애용하는 게 특징이란다. 그리고 또 하나는 나가먹자세대’. 모바일로 동네음식점을 섭렵하는 일명 외식 세대다. 맞벌이부부거나 가족 모두 음식 준비에 서툴거나 무지한 것이 그들 세대의 특징이란다.




장난스럽기는 하나 제법 그럴 듯한 구분 같았다.

나야 부끄럽긴 하지만 군불세대다. 그렇기는 해도 나 자신을 숨기기 위해 가끔 써먹는 말이 있다. “그러지 말고 나가 먹어!”. 가족에게 좀 칭찬이라도 받을까 싶어 쓰지만 자주 써먹기엔 부담스럽다. 그런 부담을 줄여주는 음식이 어쩌면 집앞의 불철주야 음식가게가 아닌가 싶다.




오늘도 늦은 저녁에 돌아오며 보니, 그 불철주야는 여전히 붐빈다. 그때까지도 줄을 서 있다. 공연한 생각일까. 머지않아 밥은 당연히 바깥에서, 잠은 집에서. 그런 때가 곧 올 게 분명하다. 아직 미혼인 딸아이를 보면 안다. 그 나이쯤이면 할 줄 알아야할 국이며 반찬 만들기를 전혀 모른다. 그들이 어른이 되어 가정을 이루면 나가먹자세대가 될 건 불을 보듯 뻔하다. 불철주야가 오늘도 불야성을 이루는 이유를 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