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신비로운 겨울밤

권영상 2016. 1. 20. 16:25

신비로운 겨울밤

권영상

    

 

 

영하 14.

영하 14도의 밤은 거칠고 무섭다. 단단히 문을 닫아걸고 꼭꼭 커튼을 여미고, 보일러를 몇 시간째 틀고 앉아도 몸이 풀리지 않는다쓰지 않던 히터를 들여와 켰다열흘간 비워두었던 집이라 그러고도 손이 시리다. 방바닥만 데워지고 방안 공기만 데워진다고 방이 훈훈해지는 게 아니다. 천장이며 벽이며 방안 가구들이 품었던 냉기가 온기로 바뀌어야 한다.

 

 

 

 

방바닥에 이불을 깔았다. 이불을 깔아놓으면 이불이 방바닥 온기를 오래 품는다는, 까맣게 잊어버린 상식을 되찾았다. 이불 밑에 손을 넣고 눈을 감는다.

밤바람이 성난 야생마들처럼 들판을 달린다. 서울과 달리 집 앞 빈 밭이며 건너편 산이 하얗게 눈으로 덮여있다. 바람도 몸이 시리겠지. 왜왜 한다. 특히나 건너편 야산 참나무숲이 더욱 몸부림을 친다. 그 너머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온전히 몸으로 막아낸다바람과 싸우는 참나무들의 노고를 내가 모를 리 없다.

 

 

 

눈을 뜨니 처마에 걸린 풍경이 또 아우성이다. 매달린 붕어가 무거워 좀 해 풍경 우는 소리를 못 들었는데 유난히 쟁강거린다. 창문 밖 으름덩굴도 춥겠지. 내 방을 자꾸 기웃거린다.

늦은 아침에 안성에 내려왔다. 다음 주 초까지 내내 영하 13,4도로 내려간다는 기상뉴스가 있었다. 무엇보다 오랫동안 안성에 비워둔 집이 걱정이었다.

 

 

 

지난해도 꼭 이맘쯤이다.

새 탁상달력에 옮겨놓은 기록에 의하면 112일이다. 수도 동파가 있었다. 서울에 모임이 있어 나름 집단속을 잘 해놓고 올라갔는데, 모임 중에 휴대폰이 놀라듯이 울었다. 옆집 남자 분이었다. 목소리가 다급했다.

내려오셔야겠어요. 수도 파이프가 터진 모양입니다. 계량기는 잠갔지만…….”

시골살이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던 나는 그 밤길로 허둥대며 내려왔다. 자동차 전조 등불에 얼음 버석버석한 뜰 마당이 눈에 들어왔다. 2층에서 외벽을 타고내린 물이 마당으로 흘러내렸다는 거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방으로 드는 문을 열어젖혔다.

 

 

 

 

!” 나도 모르게 한숨이 흘러나왔다. 거실이 물바다가 되어 출렁거릴 줄 알았는데 다행히 그렇지는 않았다. 천장에서 쏟아진 방바닥 물을 훔친 뒤 이불을 뒤집어쓰고 긴 겨울밤을 새웠다. 그때는 동파된 곳을 찾아 고치는 일이 급했지만 지나놓고 보니 그때 든 비용이 적지 않았다. 집을 비워둔 사이 다락방으로 올라가는 온수 파이프가 얼어 벌어진 일이었다.

그때의 공포스런 경험이 나를 불러 내렸다. 오기는 잘 왔다. 기온만 떨어진 게 아니라 눈까지 내려 더욱 춥다. ‘우랄 블로킹을 깨고 남하한다는 북풍은 거친 사내들처럼 모질다.

 

 

 

 

그러나 그런 밤에도 기대되는 것이 있다.

오늘밤부터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 이 다섯별이 11년 만에 대각선으로 일직선상에 놓인다고 한다.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일까 마는 왠지 그런 하늘의 일에 마음이 쏠린다. 이 밤이 지나고 새벽 629, 그 다섯 별 중 마지막 별인 수성이 지평선 위로 올라오면 금을 긋듯 다섯별은 한 줄이라는 질서를 만든다고 한다. 이쪽 지상에서는 영하의 매운 바람이 부나, 저쪽 머나먼 우주에선 별들이 공전을 하면서 아름다운 퍼포먼스를 연출한다. 우리가 먹고 사는 일로 허둥댈 때 우리가 모르는 우주에선 그런 오묘한 천문의 일이 일어난다.

 

 

 

 

이불 속에서 나와 가만히 창문을 연다. 하늘이 맑고 별이 유난히 반짝인다.

오늘따라  별들이 오래된 전설처럼 신비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