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추억처럼 살아나는 전래동요 두 편

권영상 2016. 1. 17. 18:23

추억처럼 살아나는 전래동요 두 편

권영상

 

 

 

 

나이 먹은 탓일까. 괜히 어린 시절, 셋이서 넷이서 모여 부르던 동요가 생각난다. 깊고 깊은 해저에서 뜻하지 않게 오래된 자기 한 점을 끌어올리듯 불현 머리를 스치며 떠오르는 것이 전래동요다. 아련한 추억의 심지불처럼 나를 흔든다.

 

 

 

내 고향 아랫마을은 경포호수를 끼고 있고, 동으로는 강문이라는 바닷마을과 이웃해 있다. 우리 아랫마을과 강문 사이에는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경포대역을 종점으로 하는 동해북부선 열찻길이 가로놓여 있었다. 그 철길 이쪽은 내 고향 초당이고 저쪽은 강문이다.

강문은 50여호가 사는 어촌이었다. 어선이라곤 모두 목선이어서 풍랑을 만나면 배가 전복되기 일쑤였다. 그때에 사람이 죽거나 상하는 일이 다반사였는데, 그런 와중에 정신을 상한 이가 양곰이란 사내였다.

 

 

 

그때 그이의 나이 대략 서른은 되었을까. 덩치가 크고 힘이 좋았으나 몸과 정신이 부실했다. 아마 키가 크고 힘이 좋대서 붙여진 별명이 양곰이었던 것 같다. 그이의 걸음걸이는 별났다. 두어 걸음 앞으로 걸어 나가선 다시 서너 걸음 뒷걸음질을 쳤다. 암만 앞으로 걸어 나가도 그이는 늘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래도 그이는 한겨울이면 밥을 얻으러 농촌인 우리 마을로 왔다. 밥값으로 버들개지를 꺾어오고, 때로는 조개껍데기를, 때로는 파도에 씻긴 조약돌을 가지고 왔다.

그이는 밥을 얻으면 뒷솔밭머리 도래솔에 폭 감싸인, 따스한 무덤 앞에서 밥을 먹었다. 밥을 먹고 나면 식곤증이 오고, 식곤증이 오면 누워 잠을 자다가 깨어나면 사타구니가 가려운지 벅벅 사타구니 밑을 긁었다.

 

 

곰아, 곰아, 양곰아.

양지짝에 앉아서

부랄을 썩썩 긁어라.

 

 

그때, 여덟 살쯤 되는 우리들은 이 노래를 부르며 그를 놀려댔다.

그러면 그는 그 장성한 체구답게 우리가 그러든 말든 거들떠도 안 봤다. 그러면 놀리는 아이들은 재미가 없어 흙덩이를 던지고 풀대궁이를 던지며 그를 골렸다. 그도 참다 참다 참지 못하면 바위를 굴리듯 간신히 몸을 굴리고 일어나 소리쳤다.

그러면 우리는 놀라 저만큼씩 달아났다가 다시 모여들어 그를 놀렸다. 곰아, 곰아, 양곰아. 양지짝에 앉아서 부랄을 썩썩 긁어라. 철이 없던 그때 시절, 그 노래는 왜 그리 재미있던지. 남을 놀리는 노래라 그랬던가 보다.

 

 

노래 속에 어른을 상징하는 ‘부랄(불알)’이 들어있고, 그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소리 내어 부를 수 있으니 그게 또 신이 났던 것 같다. 전래 되어 내려온 동요라기보다 우리 고향 마을에서나 불리던, 곰이라는 이의 죽음과 함께 사라진, 한시적인 동요가 아니었나 싶다.

 

 

 

또 하나 아련히 떠오르는 전래동요가 있다.

다른 지역에서도 불리었을 법한 노래다.

 

 

엄마야, 뒷집에 돼지 부랄 삶더라.

좀 주더나, 맛이 있더나.

쿤내 쿤내 나더라.


*쿤내: 구린내의 강릉지방 말

 

 

자식은 많고 좁은 방에서 부모와 함께 잠자던 옛날아이들은 성에 대해서도 일찍 눈을 떴을성 싶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잠자리 기척을 모를 리 없었을 테다.

그 중에서 머리가 굵은 어린 자식이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와 하필이면 엄마한테 고한다.

“엄마, 뒷집 아줌마는 좋겠더라.”

“뒷집 아줌마가 왜?”

“돼지 불알 삶아서.”

성에 눈을 뜬 어린 자식은 엄마 마음을 빤히 꿰뚫고 있다. 아니 은근히 어른의 내밀한 성적 욕구를 자극한다. 뒷집 아줌마는 돼지 불알 삶던데 엄마는 뭐하고 있소? 그런 약간 당돌한 메시지가 이 노래 안에 있다.

 

 

 

돼지 불알은 다 아는 그 옛날의 정력제다. 남성들이라면 누구나 한번 싱겁게 탐을 내는 물건이다. 돼지 불알만이 아니다. 대체로 힘이 센 동물의 생식기를 요리해 먹으면 그 힘이 자신에게도 옮겨올 것이라는 주술성 때문이다.

나도 어릴 적엔 영문도 모르고 이 노래를 불렀다. 뒷집은 돼지고기 삶던데 우리는 고기 한번 먹어볼 수 없나하는, 그런 막연한 마음에 불렀던 듯하다. 막내자식으로 오냐 오냐 멋대로 자란 내가 이런 노래를 안 불렀다면 거짓말이다.

 

 

 

당시 궁핍하게 살던 이들의 생활상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좀 주더냐고 물어보지만 식구가 한둘이 아닌 그 집 주인도 성큼 고기 한 조각 잘라 줄 형편이 못 된다. 고기 삶는 냄새가 마을 골목을 풍기고, 배고픈 아이들은 이래저래 배만 더 고프다.

“에잇! 구린내! 똥냄새!

아이들은 그렇게 손사래를 치며 먹고 싶은 걸 참았을 것이다.

 

 

 

지금 내 앞에 그 옛날의 고향 풍경이 떠오른다.

뒷솔밭 도래솔 무덤에서 곰아, 곰아, 양곰아!를 부르던 아이들, 심심하면 마늘밭을 뒤지는 수탉을 향해 흙덩이를 던지고, 토담집 양지짝에선 딱지치기며 구슬치기, 비석차기를 하며 코를 훌쩍거리던 아이들....... 그들 중에 나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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