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물고추에 대한 그리움
권영상
자고 일어나 커튼을 여니 들판이 하얗다. 서리다. 길 건너 배추밭 배추들이 눈을 뒤집어쓴 듯이 하얗다. 옆집 양형네 양철 지붕도, 뜰안 철쭉도 하얗다. 서리 내린지는 벌써 오래 됐다. 시월 말쯤부터다. 가을이 늦어지면 으레 내리는 것이 서리려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내게는 두 이랑의 고추가 있다. 가을이 깊어지면서 끝물 풋고추에 대한 향수가 있었다. 그걸 좀 얻어보려고 고추밭 고추를 그냥 둔 채 서울로 올라갔었다. 예전 고향의 어머니는 어린 끝물 풋고추를 따 바느질실에 꿰어 앞 처마에 걸어 말리셨다. 그걸 튀기고 설탕을 뿌려 반찬삼아 밥상에 놓아주시던 고추 부각, 그 바삭한 맛! 그 맛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다.
10월 31일, 일요일쯤 기둥에 페인트칠도 할 겸 이것저것 도색 준비를 해가지고, 다시 안성에 내려왔을 때만 해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고추 두 이랑은 여전히 건재했고, 코스모스들도, 순무 밭에서 커 오르던 해바라기도 늦었지만 노란 꽃을 그대로 피우고 있었다.
하지만 늦 가을의 하룻밤이 얼마나 무서운 줄 나는 몰랐다. 하룻밤을 자고나 무심코 밖에 나가보고는 놀랐다. 고추밭 고춧잎이 다 늘어졌고, 고추들이 멀개져 있었다. 한물 더 따도 좋을 양의 고추들이 그 좋은 빛을 다 잃어버렸다. 내 무심함이 빚어낸 참사가 분명했다. 그러니까 지난 밤 된서리가 내렸던 거다.
방에 들어와 인터넷을 뒤졌다.
서리에도 흰서리가 있고 검은서리가 있다. 흰서리는 보통의 상해를 입히지만 된서리인 검은서리는 영하 20-30도의 찬 공기 중에서 수증기가 얼어 생기는 강한 서리로 동해를 입힌다고 적혀 있다. 고추밭의 고추나, 순무 밭의 해바라기가 여태껏 그런대로 견뎠던 건 상해가 덜한 흰서리 때문이었다.
순무 밭으로 달려갔다. 아뿔싸! 해바라기가 고개를 푹 꺾고 서 있다. 어제까지 밭모퉁이에 피던 백일홍도 그 곱던 다홍빛을 다 잃었다. 바위틈의 코스모스도, 가을 내내 피던 천인국도 더운 물에 삶긴 듯 까맣다. 그래서 된서리를 검은서리라 하는 모양이었다. 내 불찰로 멀쩡한 것들을 이렇게 보내고 보니 어디 가 ‘농사짓는다’는 말을 함부로 하지 못하겠다.
흰서리는 머지않아 닥칠 검은서리의 예고편이었다.
겨울의 위력을 순순히 받아들일 준비를 하라는 신호였다. 처음 흰서리가 내릴 때 나는 그런 우주의 신호를 알아차렸어야 했다. 그러나 나의 감지력은 둔했다. 우주가 보내는 신호를 알지 못한 채 끝물고추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오늘 내린 서리는 내게 미련과 집착에서 벗어나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대지가 주는 정도 이상의 것을 더 이상 바라지 말라는, 그 정도에서 한 해를 마무리하라는 뜻을 늦었지만 나는 모든 걸 잃은 뒤에야 알았다.
서리가 녹으면서 마을 풍경이 스산해진다. 건너편 산의 숲도 잎을 다 떨구었다. 집 앞의 700여 평 고추밭은 갈아 엎은 지 오래고, 뜰 안의 그 좋던 꽃들도 다 진 지 오래다. 나를 흥분시키던 그 황홀한 자연은 이미 내 곁에서 다 떠나가고 없다. 서리 내린 스산한 풍경이 날 보고 바깥세상에서 마음을 돌리라 한다. 그리고 이제는 네 안으로 깊이 들어가 휴식할 준비를 하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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