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민낯을 사랑하는 일

권영상 2015. 11. 10. 11:41

민낯을 사랑하는 일

권영상

 

 

 

 

“결혼하면 어때?”

컴퓨터 속 사만다가 물었다.

“누군가의 삶을 공유한다는 기분은 괜찮아.”

영화 속 주인공이며, 남의 연애편지를 대신 써주는 대필 작가 테오도르의 대답이다. 테오도르는 누군가의 사랑을 공유하고 그 공유한 감정을 글로 전해주는 일을 하지만 정작 자신은 결혼을 하였음에도 외롭고 쓸쓸하다. 그가 어느 날 돈을 지불하고 컴퓨터에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깐다. 그 프로그램에 나타난 인물이 바로 사만다, 스칼렛 요한슨이다.

 

 

 

“나는 좀 부족해도 괜찮아. 내가 아닌 누구인 척 살지는 않을래. 그렇게 되면 적어도 쓸쓸해지지 않을 테니까.”

인공지능 사만다는 인간 테오도르를 사랑하고 싶어한다.

SF 같은 영화, ‘그녀 her’다. 인간이 인공지능 인간을 사랑하는, 아니 인공지능의 내면까지도 사랑하는 영화.

 

 

 

 

나는 그 영화 속, 내가 아닌 누구인 척 살지 않겠다던 스칼렛 요한슨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근데 그가 요 얼마 전 화장하지 않은 자신의 민낯을 페이스북에 공개하며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그걸 생각하며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좋을 행동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지금의 당신을 사랑했으면 합니다.’

 

 

 

 

자신의 솔직한 얼굴을 감추려 하는 심리는 우리에게만 있는 게 아닌 모양이다 화장이란 자신의 얼굴, 진짜 모습을 숨기는 일이다. 자신의 얼굴을 숨기는 일엔 그 말고 성형수술이 있다. 이미 다 아는 일이지만 우리나라는 성형천국이다.

그런 나라에 사는 우리에겐 본디의 얼굴을 숨기며 살아가야하는 아픔이 있다. 성형수술도 한 적 없고, 화장을 한 적 없지만 내 안엔 여러 얼굴의 또 다른 민낯이 숨어 있다. 나는 그 여러 개의 얼굴로 인생을 살아왔다. 근엄한 척, 타인을 잘 이해하는 척, 의로운 척, 자상한 아버지인 척, 한없이 관대한 척, 비리 하나 없이 깨끗한 척, 주름진 얼굴의 연륜을 존중하는 척 하면서도 정작 내 얼굴 주름살은 경계하는 위선자로 살았다.

 

 

 

 

그럴 때마다 느끼는 게 있다. 외롭거나 쓸쓸함에 빠진다는 사실이다. 재빨리 위선의 가면을 바꾸어 쓰는데 성공하면 할수록 오히려 나는 쓸쓸해진다. 이게 인생인가 한다. 타인을 잘 이해하는 척 하다가도 집에 돌아와 아내와 대화가 안 되는 나를 볼 때 나는 머리가 아프다. 어쩌면 나는 내 안에 숨어 있는 수많은 나 중에 제비뽑듯 매일매일 다른 나를 뽑아들고 그게 나인 척 살고 있는지 모른다.

 

 

 

생각해 보면 몸과 마음이 여느 날 보다 더 피로한 날은 내가 아닌 나의 모습으로 하루를 방어하며 산 날이다. 좀 못 났다는 소릴 듣더라도 가끔 하루쯤은 과장된 내가 아닌 온전한 나의 민낯으로 살고 싶다. 나를 찾으러 먼 여행을 떠나는 일도 좋지만 단 하루, 여기 앉아 솔직한 나로 살아보는 일도 그 못지않게 좋을 듯싶다.

내 얼굴에 주름살과 뾰루지를 당당히 드러내며 살 때 행복하다. 실수투성이의 나로 살 때 나는 행복하다.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사는 일이란 나를 외롭고 쓸쓸하게 만드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