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그림책 읽어드릴게요
권영상
가끔 전철에서 아기와 나란히 앉은 젊은 엄마를 본다. 참 행복해 보인다. 무엇보다 엄마가 아기에게 하는 말이 흥미롭다. “여기는 신사역이랍니다.”, “엄마가 그림책 읽어드릴게요.”, “발장난 치지 말고 이야기 잘 들으세요.”
아기에게 꼭꼭 존댓말을 한다. 요즘, 자녀와의 대화 방식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몰라도 이런 대화의 풍경은 어디서나 만날 수 있다. 부모가 자녀에게 퉁명스럽게 말하는 것보다 듣기에 좋다. 그런 존댓말을 듣고 자라는 아이는 내심 뿌듯하고, 자존감도 커질 것이다.
요 며칠 전, 아파트 마당을 걸어나갈 때다.
승용차 옆에 선 엄마인 듯한 이가 차를 향해 걸어오는 사내아이를 ‘어서 오세요’했다. 그 아이가 다가오자, 차 문을 열어주며‘엄마는 앞에 탈게요’하며 아이를 태웠다. 아이 엄마도 뒤따라 차에 오르더니 머뭇거리는 남편인 듯 한 이에게 타박을 했다.
“뭐해! 빨리 가지 않고!”
그러자 승용차는 떠났고, 나는 떠나가는 승용차의 뒷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나이 탓인가. 좀 전의 장면이 내 머리를 어지럽혔다. 어린 자식을 향해선 부드럽고 따듯한 목소리로, 그것도 존대를 해가며 떠받치듯 말하면서 정작 아이의 아버지인 자신의 남편에겐 짜증 부리듯 하대하는 모습이 마음에 거슬렸다.
자녀에게 존대해주면 그 자녀가 자존감 있는 당당한 사람으로 성장할 것이란 믿음은 옳다. 그러나 아이들을 세상모르는 철부지 정도로 본다면 그건 오산이다. 아이들이란 어른과 달리 편견이 없다. 세상을 똑 같이 공평하게 본다. 그러니까 눈에 들어오는 세상을 다 본다는 이야기다. 그 아이는 자신에겐 존대어를 쓰는 엄마가 왜 아빠에겐 하대하거나 타박하는지 그것도 본다. 한 가정 안에서도 공평하지 못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걸 아이는 일찌감치 배우는 셈이다. 커서도 약자를 차별하거나 괴롭히는 사람은 부모로부터 존대를 받지 않고 커서가 아니다. 부모의 공평하지 못한 언행이 자녀를 그렇게 키웠기 때문이다.
주변사람들과는 달리 나에게만 각별하게 대하는 엄마는 차별을 보기 좋게 가르치는 나쁜 선생님과 같다. 내 아이에게만이 아니라 그 아이의 아버지인 남편에게도 똑 같이 대하기만 한다면 가족 간에 서로 평어를 쓴대도 크게 나쁠 게 없다고 본다.
“어머니! 로봇 사달라고 떼 쓴 거는 저의 잘못이었어요. 앞으로 어머니 말씀처럼 모범적이고 훌륭한 아들이 되도록 노력할 게요. 그러니 제발 이번 한번만 용서해 주세요.”
6살쯤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가 광화문 모 대형서점에서 서가 사이를 이리저리 빠져 달아나며 울던 일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그 아이의 뒤에는 그의 엄마임 즉한 이가 쫓고 있었고, 아이는 그런 와중에서도 흐느껴 울며 또박또박 하소연했다.
자녀에게 존대를 하는 엄마도 그렇지만 자녀에게 지나치리만큼 존댓말을 강요하는 것도 어색하다. 물론 어느 것이나 장단점은 있겠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부모 자신도 타인에게 진심으로 공평하게 존대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아이들은 부모가 하는 일을 뒤에서 보고 배운다. 억지스런 존대어로 차별을 가르치기보다 평범한 말로 공평을 가르치는 것이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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