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이후

권영상 2015. 11. 26. 12:21

이후

권영상

 

    

 

꼭 두 달 전이다. 어찌된 일인지 휴대폰 충전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통화는 여전히 가능했다. 충전 경고 표시만 나타날 뿐 실은 충전이 되는 거려니 했다. 어쨌건 나는 잠자리에 들 무렵이면 충전 잭 꽂아놓는 걸 잊지 않았다.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지나도 별 문제가 없이 통화가 가능했으니 충전이 되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그게 내게 헌사하는 휴대폰의 마지막 서비스였다. 나흘째 아침, 타버린 종잇장처럼 갑자기 휴대폰 화면이 까맣게 변했다. 더 어떻게 손을 쓸 수 없었다. 나는 휴대폰 속에 저장된 수많은 메모들과 사진과 주소록이 걱정됐다.

 

 

 

아침을 먹고 대리점으로 갔다. 내 휴대폰을 들여다보던 이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죽었네요.”

휴대폰을 구입한 지 그 새 4년이 지났다.

나는 새 휴대폰을 사면서 옛 휴대폰 속의 자료를 옮겨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또 고개를 저었다. 오래된 구형인데다 싼 비용으로 생산되던 제품이라 여러 해 전에 단종 됐다는 거다. 정 살려보려면 용산 어디 상가를 찾아가 비용을 지불하고 살려보라 했다.

그럴 만큼 중요한 건 아니랍니다.”

 

 

 

나는 순순히 그 안의 것들을 포기했다. 그리고 새로 출시된 휴대폰 중에서도 내 나이에 맞는 소박한 휴대폰을 장만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오는 대로 아내의 휴대폰에 저장된 가족들과 친지들의 전화번호를 일일이 옮겨 적었다. 그리고 명함이며 편지 등에 흩어져 있는, 옛 직장 동료나 고향 분들의 번호도 적어넣었다. 옛 휴대폰에 저장된 양에 비하면 1할도 안 되는 번호였다. 직장도 오랫동안 다녔고, 오랫동안 글도 쓴답시고 사람들을 만났으니 이래저래 알고 지내야하는 이들이 많았었다. 그렇지만 더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들에게서 전화라도 와주면 입력할 밖에 다른 방법은 없었다.

 

 

 

평소에 자주 전화를 주고받는 편이 아니긴 해도 막상 전화를 기다리고 보니 전화가 없었다. 옛 휴대폰에 저장된 100여 명의 전화번호는 내게 어떤 의미로 존재했던 걸까, 그 생각이 났다. 가끔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고 싶어 그 100여 명의 전화번호를 넘겨보지만 전화할 한 사람이 없어 외로움을 느낄 때가 있었다. 그렇게 외로움을 주던 것이 그 100여 명의 번호였다.

한 달이 가고, 또 한 달이 갔다. 그 동안 나는 꽤 여러 사람의 전화를 받았고, 그들의 전화번호를 저장했다. 그들이 고마워 그들과 소통하면서도 전화번호를 몰라 통화를 할 수 없는 이들이 궁금했다. 그들은 지금 뭘하고 있는지, 나를 잊고 사는 건지. 아니면 내가 먼저 안부를 묻지 않아 나를 오해하고 있는 건 아닌지.

 

 

 

그런 저런 생각으로 나는 지금 그들과 결별하고 있는 중이다. 사람의 인생 중에는 자신이 원해서 한 아픈 작별도 있지만 원하지 않는데도 다가오는 작별이 있음을 이렇게 알아가고 있다. 나는 이제 한 시절을 함께 했던 이들을 어쩔 수 없이 잊고, 또 새로 시작되는, 새로이 알게 되는 사람들과 만나며 고된 강을 건너가야 한다. 처음에야 좀 낯설겠지만 서로 통화를 주고받으며 안부를 물으며 정이 들어갈 것이다.

떠나간 이들의 자리는 또 낯설고 새로운 이들로 천천히 채워질 것이다. 이후의 인생에선 가급적 나와는 전혀 다른 길을 가는 이들과 만나고 싶다. 그래서 나를 새로이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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