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비평

울고 싶은 일이 많은 현실

권영상 2015. 8. 18. 11:30

 

울고 싶은 일이 많은 현실

권영상

 

 

 

 

 

문학이란 무엇인가? 나는 늘 그런 질문을 내게 한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선뜻 하다가도 또 다른 상황에 부딪힐 때면 나는 다시 내게 똑같은 질문을 던진다. 지금쯤, 아니 언제 또 바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지금이라는 시점에서 할 수 있는 그것에 대한 대답이 있다. 문학이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그린 삶의 무늬다. 삶의 무늬란 우리가 말하고 먹고 입고 잠자는 일상과 그 일상 속의 인물들이 꿈꾸는 꿈의 흔적이다. 그러므로 문학작품엔 그 시대 사람들의 일상과 그들이 추구한 독특한 궤적이 있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 시대 어린이들의 현실과 어린이들과 어른, 또는 사회적 가치 충돌과 충돌에서 빚어지는 그늘, 그 모두를 동시문학의 무늬로 만들어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런 시대에 시인들의 세상을 향해 던지는 목소리는 여전히 범상치 않다.

그것은 어린이가 처한 현실이 녹록치 않기 때문이다.

 

 

 

1. 울고 싶은 일이 많은 현실

 

 

골목길을 지나는데/ 옆집 현기가 찬 공이/ 내 이마/ 탁- 쳤어요.// 별로 안 아팠지만/ 두 손으로 얼굴 감싸고/ 풀썩 무너앉아/ 서럽게 울었어요.// 짜증났는데/ 잘 됐다./ 내친김에 우는데// 현기가 다가와/ 어쩔 줄 몰라 합니다.// 현기 엄마 뛰어와/ 현기 등짝 때리는 소리/ 짜악-짜악-/ 야물게 들립니다.

 

 

                                                                 이수경의 「공교롭게도」 전문 (《열린아동문학》 2015년 여름호)

 

 

이다음에 뭐가 될 거야?/ 난 초콜렛이랑 자장면이랑 딸기 좋아하니까/ 그 셋을 합친 걸 만들래/ 연구원 되고 싶다고?/ 그럼 일단 공부를 잘해야겠네/ 자, 숙제부터 하자// 엄마, 방금 장래 희망 바뀌었어/ 자전거 타는 것도 좋고/ 비행기 타는 것도 좋고/ 새도 되고 싶으니까/ 그 셋을 합친 걸 만들래// 과학자 되고 싶다고?/ 그럼 일단 공부를 잘 해야겠네/ 자, 숙제부터 하자//....... 엄마, 방금 장해희망 바뀌었어/ 숙제 내주는 사람들 머릿속에 들어가서/ 숙제 잊어버리게 할래/ 뇌과학자 되고 싶다고?/ 그럼 일단 공부를 잘 해야겠네/ 자, 숙제부터 하자. 후략

 

                                                                        이옥용의 「장래 희망」 일부 (《시와동화》 2015년 여름호)

 

 

이옥용의 시를 읽고 나면 이수경의 시에 나오는 화자인 ‘나’가 왜 그토록 서럽게 울어야 하는지, 그의 일상이 왜 짜증에 휩싸여 있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이수경의 시에서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부분은 1.2.3연이 아닌가 한다. 나머지 4,5연은 앞의 나의 행위에 대한 후회, 또는 미안함이 드러나 있다. ‘나’는 현기의 의사와 상관없이 현기를 좋아하는데 현기가 그걸 받아주지 않아 짜증나 있다. 그도 아니라면 이 시의 제목처럼 공교롭게도 현기의 공을 맞아 내가 품고 있던 짜증이 서러운 울음으로 폭발했다. 어떻든 ‘나’는 마음속에 서러운 울음을 품고 산다. 풀썩 무너져앉아 얼굴을 감싸 쥐고 울어야할 만큼의 아픔이 있다. 부모의 보호를 받으며 사는 어린 아이들이라고 왜 눈물이 없고, 슬픔이 없고 외로움이 없겠는가. 어린 ‘나’가 울지 않을 수 없는, ‘잘 됐다’하고 울어야할 현실이란 무엇일까.

 

 

 

이옥용의 시가 그에 대한 얼마치의 대답을 내놓고 있다.

이 시에는 막무가내며 숙제하기를 강요하는 ‘엄마’와 그런 엄마의 강요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나’가 있다. 엄마는 내가 원하는 것과 상관없이 내 꿈을 연구원, 과학자, 뇌과학자 등으로 단정 지으며 공부 잘 하기를 끝없이 압박한다. 나의 고민은 여기에 있다. 그 고민이란 소통 부재의 문제다. 엄마와 나는, 가장 가까운 사이면서 가장 소통이 안 되는, 엄마가 원하는 대로 이끌려 가야하는, 어쩌면 시 속의 ‘나’를 울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모는 관계에 있다. 그게 ‘나’가 품고 사는 눈물이며 우리 시대 어린 아이들의 고민으로 얼룩진 삶의 무늬다.

 

 

 

2. 누가 좀 숨통을 열어주었으면

 

 

 

내가 오는 길에 보니까 말이야/ 길가 풀섶에서/ 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오지 않겠니?// 무슨 연기가 이런데서 나오나 하고/ 풀섶을 헤치고 보니까// 개구리가 애를 낳고 첫국밥 해먹으려고/ 미역국을 끓이느라고/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있지 않겠니?// 아기는 어디 있나 하고/ 보니까/ 포대기 위에 뉘어 놓았는데,/ 엄마를 꼭 빼다 박았어// 눈은/ 툭,/ 불거지고/ 입은 넓죽/ 앞다리는 짤막/ 뒷다리는 길쭉/ 배는 불룩// 어허, 그것 참!/ 사람 말을 그렇게 못 믿어서 쓰나

 

 

 장철문의 「잘 생긴 거짓말 하나」 전문 (《시와동화》 2015년 여름호)

 

 

 

 

우리 집 앞쪽으로 흐르는/ 방터골 작은 개울물// 가만히/ 옆에 앉아 있으면// 때 묻었던 마음/ 한 개/ 두 개/ 세 개……// 물 빗자루로 잘잘잘/ 씻어내린다.// 새길 나듯/ 마음 길 환해진다.

                          

                                                                남진원의 「물 빗자루」 전문 (《열린아동문학》 2015년 여름호)

 

 

 

아픈 마음을 쓰다듬어주는 데에 웃음만한 것이 없다. 웃겨주거나 아니면 낮고 부드러운 말로 마음을 어루만져 주거나. 위의 두 편의 시는 답답하고, 외롭고, 이해받지 못해서 힘들어하는 이들의 위안이 되어주기에 충분하다.

 

 

 

 

장철문의 「잘 생긴 거짓말 하나」는 정말 오랜만에 웃어보는 훌륭한 웃음이다. 선한 거짓말이 엄숙한 진실보다 몇 곱절 더 세상을 향기롭게 한다는 말이 옳다. 이야기 내용으로 보아 화자는 옛 문화를 향유했던 할아버지 같다. 풀섶에서 하얀 연기가 오르는데 보니, 개구리가 애를 낳아 첫국밥을 먹고 있더란다. 거짓말치고 심하다. 물에서 산란을 하는 개구리가 길가 풀섶에서 분만을 하고, 미역국까지 끓이고 있다. 더욱 웃겨주는 건 포대기에 뉘여 놓은 개구리 새끼가 꼭 제 엄마를 빼닮았다는 거다. 올챙이 과정도 없이 엄마를 빼닮은 개구리를 낳다니! 웃지 않을 수 없다.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는 이야기 생산 능력, 그리고 산문의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해 후반부를 2어절 1행으로 배치하여 운율을 고려한 고민도 눈에 띈다. ‘사람 말을 그렇게 못 믿어서 쓰나’ 하는 능청스러운 마지막 행에서 또 한 번 웃지 않을 수 없는 ‘잘 생긴 거짓말’이다.

 

 

 

 

남진원의 시를 읽으면 그야말로 내 몸에 묻었던 세상의 때가 한꺼번에 씻겨나는 느낌을 받는다. 피로사회를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상과 불화한다. 가만히 우리 세상을 들여다보면 화해할 아무 건더기가 없다. 가중되는 학습강요와 학원과 숙제에 시달리는 아이들을 달래어 줄 수 있는 것이란 현실적으로 별로 없다. 있다면 멀리 떨어져 있는 자연뿐이다. 그곳에 무한한 포용과 위안의 자연이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사람의 마음은 덜 아프다. 자연이야말로 현대인을 치유하는 최후의 자산이 아닌가 싶다. 아무 설명이 필요없는, 그야말로 잘 생긴 시다.

 

 

 

 

3. 큰 노릇 하는 작은 것의 아름다움

 

 

 

쓸모없이 할아버지네 마당을 굴러다니던/ 큰 돌멩이 한 개/ 자물통이다.// 닭장 문 앞에서/ 어미 닭과 병아리 열서너 마리// 밖으로 한 발짝도 못 나오게/ 떡 지킨다.// 풀 뽑는 할머니 대신/ 꼼짝 않고 앉아/ 왼종일.

                           

                                                                    유미희의 「자물통」 전문 (《동시마중》 2015년 5.6월호)

 

 

 

설탕 두 숟갈처럼/ 몸무게가 25그램밖에 나가지 않는/ 작은 북방사막딱새는// 남아프리카에서 북극까지/ 삼만 킬로미터,/ 지구 한 바퀴를 난다고 한다.// 살다가 가끔 마음의 몸무게가/ 몇 백 배 더 무겁고 힘들고 괴로울 때// 나는,/ 설탕 두 숟갈의 몸무게로/ 지구 한 바퀴를 날고 있을/ 아주 작은 새 한 마리/ 떠올리겠다.

 

 

                                                  임복순의 「몸무게는 설탕 두 숟갈」 전문 (《동시마중》 2015년 5.6월호)

 

 

 

 

보잘 것 없는 것처럼 보이는 작은 것이 뜻밖의 큰 노릇을 한다는 시들이다. 유미희의 시 속에 등장하는 자물통은 의외로 흔한 큰 돌멩이다. 돌멩이는 돌멩이로 있을 때도 저의 노릇을 할 테지만 사람의 손에 맞게 쓰일 때 더욱 의미 있어진다. 그러니까 닭장문 앞에 놓일 때 돌멩이는 한 번도 꿈꾸어 보지 못한 큰일을 한다. 자물통 노릇이다. 그런 돌멩이를 문에 받혀놓은 할머니는 걱정 없이 농사일을 할 수 있다.

 

 

 

 

임복순의 「몸무게는 설탕 두 숟갈」도 그렇다. 25그램밖에 되지 않는 북방사막딱새는 남아프리카에서 북극까지 그 먼 거리를 날아간다. 작은 몸속에 숨어있는 큰 힘이다. 무엇보다 이 시의 초점은 ‘설탕 두 숟갈’에 있다. 여기서 설탕 두 숟갈이란 작은 것, 보잘 것 없는 것, 사소한 것 등의 의미를 갖는다. 작고 보잘 것 없는 것이 자신의 ‘몇 백 배 더 무겁고 힘'든 일을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마하트마 간디가 설탕 한 포대 45킬로그램의 몸으로 2억 인도를 이끌었다는 사실과 유사하다.

 

 

 

4. 자연의 노래

 

 

 

발 밑 언 땅이/ 햇살 한 올이라도 더 받게 하려고/ 겨울나무는/ 제 그림자를 작게 줄이지/ 짧고 가늘게/ 줄이고 또 줄이지// 그렇지만 여름나무는/ 발 밑 벌레들이 뜨거운 햇살에 데기라도 할까봐/ 제 그림자를/ 크게 부풀리지/ 지저귀는 새들 노래까지 다 안을 만큼/ 넉넉한 품이 되어/ 넓고 시원한/ 그늘을 만들지.

             

                                                   문삼석의 「나무들의 그림자」 전문 (《어린이책 이야기》 2015년 여름호)

 

 

겨울 들판은/ 지구의 냉장고야// 잘 여문 꽃씨/ 깊숙이 묻어 두고// 싹 틔우기 좋은 날/ 고르고 골라// 꽃씨 속에 숨겨 둔/ 연한 새싹 꺼낸다// 바람도 햇볕도 알맞은/ 딱, 그날/ 지구냉장고는 바쁘다

 

 

                                                              고영미의 「냉장고」 전문 (《오늘의 동시문학》 2015년 여름호)

 

 

 

두 편 모두 자연의 힘은 크고 신비로울 만치 아름답다는, 자연의 노래다. 문삼석의 「나무들의 그림자」는 두 개 겨울나무와 여름나무의 미덕을 노래한다. 겨울나무는 언 땅이 어서 녹으라고 제 그림자를 줄이고 줄여 햇살 한 올이라도 더 받게 하고, 여름나무는 땅을 기는 벌레들이 뜨거울까봐 제 그림자를 부풀린다는 내용이다. 아무리 배부른 부자도 제 혼자만의 부로 행복을 누릴 수 없다고 유추한다면 무리일까.

고영미는 겨울 들판을 ‘지구의 냉장고’로 보고 있다. 지구 냉장고는 지난 가을 꼭꼭 여문 꽃씨앗을 삼동 내내 보관했다가 대지에 다시 봄이 오면 꺼내어 씨앗을 틔운다. 바람도 햇볕도 알맞은 그날, 발아에 적당한 그날 그때를 골라 세상에 내놓는다. 어찌 꽃씨앗만이겠는가. 지상의 모든 존재들은 다 자연이 만들어 주는 혜택과 축복 속에서 산다. 그러므로 자연만이 사람의 눈물과 아픔을 변함없이 이해하고 위로할 수 있겠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문학이란 우리 시대 사람들의 삶의 무늬다. 지금 우리 시대 어린이들의 현실이란 매우 불우하다. 공부 강요와 강요로부터 벗어나려는 충돌은 어찌보면 심한 가치의 혼란이기도 하다. 그러한 상황을 두고 그려진 시의 무늬치고 너무도 소박한 것이 오늘 우리 동시인들의 현실이기도 하다. 이럴 때일수록 두 부류의 시인들이 나타난다. 목소리를 더욱더 높이든가, 아니면 예술이라는 그늘 속으로 숨어버리든가.

 

<오늘의 동시문학> 2015년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