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비평

가족을 향해 불어오는 바람

권영상 2015. 5. 28. 10:21

 

가족을 향해 불어오는 바람

권영상

 

 

 

 

가정은 견고해야 한다. 견고한 바탕에서 안정적인 교육과 정서적 만족, 자녀 출산, 가족의 정체성, 애정 등 가족에 대한 가치관과 구성원간의 관계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유년의 가정 체험이야말로 한 인간의 성장에 끼치는 영향은 막대하다. 그런 점에서 가정은 그 어떤 사회적 집단보다 더 먼저 견고해야할 이유가 있다.

 

 

그러나 가정은 저 혼자 섬처럼 존재할 수 없다. 이 세상 모든 가정은 존재하는 시대 사회적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가정 바깥에서 일어나고 있는 급변하는 광풍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 가정 안으로 끊임없이 스며든다. 현대주의적이며 개인주의적 사고와 경기 침체는 저출산과 무자녀, 만혼, 이혼과 재혼, 부부 폭력, 아동 학대, 부부 역할 변화와 별거부부, 독신, 이혼자 가족을 만들어 냈다.

 

 

 

가정으로 불어오는 바람은 거세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 위세는 가족 문화를 바꾸었으며, 가족구성원의 전통적인 역할을 변모시켰다. 직업을 갖지 못한 수많은 ‘아들’과 ‘아버지’를 양산했고, 수많은 신용불량자를 만들어냈다. 또한 세계 최고의 이혼율, 이것은 오늘날 우리나라 가정이 얼마나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지표이다. 동시에 그 가정 속에 놓인 어린 자녀들의 현재와 미래를 짐작케 하고도 남는다. 거기다가 또 하나,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지나친 교육열이다. 이 비정상적인 교육열이야말로 우리 어린이들의 숨통을 조이는 또 하나의 폭력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가정은 지금 거센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그 바람의 여파는 우리 동시문학 속으로 파고들어 그 일면을 노정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1. 가족 속에 나타난 노동의 이중성

 

 

 

경기가 침체에 가장 민감한 곳은 아무래도 가정이다. 가정의 주 소득원이 사회 속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사회 경제적 문제는 직접적으로 가정에 충격을 가하고 구성원들은 충격에 허덕이면서 가족 내의 고단한 역할에서 신음한다.

 

할아버지 생신 날/ 눈비 오는데// 지하철 갈아타며/ 꽃 배달 간다.

 

 

                                                                  -강정규의 「실버 퀵」 전문 (《열린아동문학》 2014년 겨울호)

 

 

 

이 시 속 ‘할아버지’에게도 추운 세상의 바람은 비켜가지 않는다. 바람은 할아버지의 가정에도 불어닥쳤다. 불어닥친 바람은 이젠 쉬어야할 할아버지를 일터로 내몰고 있다. 이 시가 비극적인 것은 이 시의 구조 때문이다. 오늘은 할아버지 ‘생신날’이다. 예전 같으면 생일상을 받고 가족들의 축복 속에서 그날을 편안하게 보내는 날이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노동 현장에서 물러나야할 이 할아버지는 그 누구 때문인지 오늘도 돈벌이에 나서야 한다. 근데 생신인 오늘 비가 온다. 이 비오는 날 할아버지는 붐비는 지하철을 타고 꽃 배달을 가고 있다.

이 시를 더욱 비극적이게 만드는 부분은 ‘지하철을 갈아타며’이다. 할아버지가 하필 지하철을 이용하는 것은 무료승차 때문이다. 나이 65세가 이미 넘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비굴하게 공짜 지하철을 타며 ‘꽃 배달’을 해야 하는 비극성, 그것이 이 시를 슬프게 한다. 우리 사회의 쓸쓸한 자화상을 보는 듯하다.

 

 

구들장귀신이 붙었다고 잔소리하면서도/ 밤마다 기도하는 할머니/ “저놈 아가 내 자식이라가 아이라/ 심성이 곱고 법 없이도 살 놈입니더/ 어디던 가기만 하만/ 해 안기치고 단단히 할 낍니더./ 그라니가네 잘 좀 봐 주이소.” // 저렇게 기도를 하는데도/ 삼촌이 아직 구들장 지고 앉아 있는 거 보면/ 하나님이 할머니 사투리를 못 알아듣는 거다.

 

                                                -박혜선의 「백수 삼촌을 위한 기도」 전문 (《아동문학평론》 2014년 겨울호)

 

 

 

이 시엔 일자리를 얻지 못해 ‘구들장귀신’이 된 무력한 손자와 일자리를 구해 달라고 기도하는 무력한 나이의 할머니가 있다. 그리고 아무 대답도 들어줄 수 없는 또 한 분의 무력한 ‘하나님’이 있다. 그러므로 이 시 속 인물들이 뚫고 나갈 터널의 끝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그것이 이 시를 더욱 갑갑하게 한다.

우리나라 청년 구직자 수는 이미 100만 명을 넘어선지 오래다.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할머니는 집에서 빈둥대는 ‘저놈 아’를 위해 진한 사투리로 기도한다. 심성이 곱고 어디 가도 해 안 끼칠 거니까 일자리 하나 구해달라고 대답 없는 기도를 한다.

 

 

외면적으로 보기엔 할머니의 손자 사랑이 지극하다. 그러나 이 가족 사랑에도 양면성이 있다. 한 녘으론 구들장귀신 붙었다고 잔소리를 하면서 또 한 녘으론 그를 위해 기도한다는 이중심리다. 가족에 대한 사랑도 짓누르는 시대사회상에 의해 왜곡되고 있음을 본다.

앞의 시가 노동 현장에서 물러나야할 할아버지가 생계를 위해 계속 노동을 해야한다면 이 시는 노동력을 갖춘 젊은 ‘저놈 아’가 일자리가 없어 빈둥대는 우리 사회의 이중적 노동구조를 드러내고 있다.

 

 

 

2. 가족 속에 스며든 현실의 아픔

 

 

 

가정이 표류하고 있다고들 한다. 가정을 둘러싼 파도의 격랑에 가정이 맥없이 중심을 잃고 있다는 말이다. 그것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가정과 가족 구성원은 시대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시대와 호흡하며 공존해야 하는 것이 가정이기 때문이다.

가정이 오늘 날처럼 힘들다 힘들다 하는데 유독 ‘행복한 우리 가정표 동시’를 차마 이 자리에 펴놓을 수는 없다. 그런 아픔이 여기에 있다.

 

 

구제역 걸린 소들을/ 땅에 파묻은 날 아빠가 울었다.// 매몰장으로 끌려갈/ 자식 같은 소에게/ 마지막 여물을 주다 말고// 영문도 모르고 꿈뻑이는/ 그 순하디 순한 눈들을/ 차마 마주 볼 수가 없어서// 뒤돌아 축사 기둥을 붙잡고/ 소처럼 등이 휜 아빠가/ 음머 음머 울었다.

 

                                                         -한현정의 「죽은 소들에게」 전문 (《열린아동문학》 2014년 겨울호)

 

 

 

농촌을 아직도 한가롭고 여유있게 파악하는 시각은 조선조 낙향한 전원문학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농촌 경제 역시 빚과 자유무역협정의 파고에 시달리고 있다. 농촌을 힘들게 하는 일 중에 또 하나, 해마다 겨울이면 찾아오는 구제역이 있다. 악성구제역은 치사율이 50%에 달한다. 주로 호흡기와 소화기 계통으로 점염되기에 감염이 의심스러운 동물은 모두 도살 후 불태워야 할 만큼 무섭다. 2011년 한 해의 도살처분 규모가 350만 마리였다니 그 어떤 농가도 이 파도를 피해 가기란 어렵다.

더욱 고통스러운 것은 소들의 ‘영문도 모르고 꿈뻑이는 그 순하디 순한 눈들’이다. 그걸 바라보는 아빠는 축사 기둥을 붙잡고 소처럼 음머 음머 운다. 소를 자식같이 키운, 등이 휜 한 아버지의 모습이 오늘 우리 농촌경제의 얼굴이 아닐까 한다.

 

 

‘고구마 다 얼어 죽겠네./ 이렇게 첫눈이 펑펑 내리면 어떡하지?’// 무릎까지 오는 장화 신고/양쪽 호주머니에 백반 조각 불룩하게 넣고도/ 엄마는/ 뱀이 무서워 가을 내내 고구마를 못 캤는데// 첫눈이 퍼붓는다./ 더운 나라로 일하러 간 아빠가/ 우리를 걱정하는 만큼/ 쏟아져 내린다.

 

                                             -서금복의 「첫눈이 걱정처럼」 전문 (《오늘의 동시문학》 2014년 가을 겨울호)

 

 

시 속의 가족은, 아빠는 더운 나라에 일하러 가고 없고, 화자인 나는 엄마와 단 둘이 살고 있다. 이른바 남성의 노동이주 가족형태다. 가족 구성원이 아빠, 엄마, 나이던 전형적인 구성요소에서 일자리를 찾아간 아빠가 빠져 있다. 가족이 무엇을 의미하고, 구성원간의 사랑이 어떤 의미를 갖느냐는 질문의 대답은 이제 복잡하게 됐다.

가족은 변했다. 노동 이주로 인한 별거 가족뿐 아니라 국제결혼, 장거리 결혼, 별거부부가족, 독신가족, 무자녀가족, 이혼자가족 등 가족은 다양한 형태로 변모하고 있다. 그와 동시에 가족 구성원의 역할도 변하고 있음을 물론이다. 이 시속의 엄마는 뱀이 무서워 백반조각을 호주머니에 넣고도 눈이 오도록 고구마를 캐지 못하고 있다. 가족 구성원의 변모된 역할에 적응하지 못하는 엄마가 이 시를 비극적이게 한다. 아빠는 ‘더운 나라에’ 가 돈을 벌어 보내오지만 정작 아빠의 역할과 아빠의 사랑은 보내오지 못하고 있다.

 

 

 

3. 사랑 속에 숨은 가족 폭력

 

 

 

 

우리나라에만 나타나는 가계비용의 특성 두 가지가 있다. 의복비와 교육비 지출이다. 가계 소득 중에서 교육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무려 48.5% 라고 한다. 이렇게 많은 교육비를 쏟아 붓는 이유 중의 하나가 지나친 교육열 때문이다. 그 교육열의 중심에 우리나라 엄마들이 있다는 게 학자들의 견해다. 이런 비정상적인 교육열이 사회문제가 된 지는 이미 오래다. 그 배경에 체면과 학벌주의 가치관이 있다.

 

 

가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수학 학원을 가는지, 엄마가 수학 학원을 가는지. 내가 책가방을 메고 가는데, 내가 아이스크림을 빨며 가는데...... 내가 아닌 것 같다.// 맛도 없다.

 

 

                                                            -김찬곤의 「가다 보면」 전문 (《어린이책이야기》 2014년 겨울호)

 

 

날마다 엄마는 내게/ 지팡이를 챙겨주시네// 할머니처럼 나는 무릎이 삐걱거리지도/ 할아버지처럼 허리가 아프지도 않은데// 지팡이가 없으면 내가 넘어질 줄 아시지만/ 엄마가 챙겨주신 지팡이는 너무 길고 무거워// 넌커서뭐가될래엄마친구아들은올백맞았다더라공부도못하면서게임이나하고내가너만할때는어땠는줄아니인터넷끊어버린다다다다다.....// 가파르지도 않고 미끄럽지도 않은 길/ 다 자라기도 전에 늙어버린 내가/ 엄마가 챙겨주신 지팡이를 끌고 학교에 가네

 

                                                                -곽해룡의 「지팡이」 전문 (《아동문학평론》 2014년 겨울호)

 

 

 

위의 두 시는 오늘날 우리의 교육열이 누구의 교육열인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우리나라의 지나친 교육열은 자녀의 교육에 대한 열정이 아니라 부모, 그것도 엄마의 자녀에게 거는 무모한 열정임이 드러나고 있다. 부모가 자녀에게 이토록 공부를 강요하는 이유를 학자들은 부모의 체면 세우기, 대리만족, 비뚤어진 자녀애 때문이라고 한다.

김찬곤의 시에 등장하는 ‘나’도 엄마의 강요에 의해 ‘수학 학원’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유도 없이 학원으로 가야하는 나는 내가 아닌 껍데기라서 아이스크림 맛도 못 느낄 만큼 고통스럽다. 엄마의 비뚤어진 자녀사랑 뒤에 숨어있는 또 다른 위해성을 볼 수 있다.

 

 

 

 

곽해룡의 시에도 이런 사랑의 양면성을 볼 수 있다. 지팡이다. 엄마는 나를 몹시 사랑이라도 하는 듯이 내 걸음걸이를 도와줄 지팡이를 내게 건넨다. 그런데 그 지팡이라는 것이 나를 짓누르는 학업부담과 스트레스 덩어리다. ‘엄친아’의 ‘올백’ 이야기, ‘공부도 못하면서 게임이나’ 한다는 나의 분노를 촉발시키는 이야기, 인터넷을 끊어 더 이상 기댈 곳 없게 만들겠다는 엄포의 지팡이다.

어쩌면 요즘 어린이들은 이 시속 엄마가 쥐어주는 지팡이를 하나씩 들고 ‘내가 아닌 것 같은’ 고충을 겪으며 학원을 전전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가정은 외부세계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의해 분명 표류하고 있다. 왜곡된 교육열로 인해 가족 간의 인간관계가 파괴된다. 쉬어야할 노인들은 고된 일을 찾아 나서야하는가 하면 청년들은 일자리가 없어 행복하지 않다. 밤낮없이 더 많은 학원을 다닐수록 어린이들은 행복하지 않다. 침몰하고 있는 가정과 가족의 아픔을 어루만져줄 공감의 시가 그런 의미에서 절실하다.

 

<오늘의 동시문학>2015년 봄호 동시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