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내 인생도 멋지잖아

권영상 2015. 5. 31. 18:24

내 인생도 멋지잖아

권영상

 

 

 

 

갓 출판한 책 한 권을 보내주려고 후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침 한가한 시간이라며 넙죽 내 전화를 받는다. 이런저런 안부 끝에 그의 주소를 받아 적었다. 내가 알기로 그의 생활터전이 수원이었는데 용인으로 바뀌었다.

“방을 좀 늘린 모양이지?”

나는 내가 아는 대로 물었다.

글쟁이인 그는 늘 자신의 방을 가질 수 없어 안타까워했다. 꼭 제 방이 있어야 글을 쓰는 건 아니지만 때로 방해받지 않을 공간이 필요하기도 하다. 중년의 나이에 자신의 방을 하나 갖는다는 것, 행복이라면 달콤한 행복이다.

 

 

 

“선배님, 집 하나 간신히 얻어 좋긴 한데 말이에요.”

그의 대답이 어째 시큰둥했다.

좋은 데 왜? 하고 다시 내가 물었다.

“부자 아파트 옆이라 제 인생이 쪼그라드는 기분이에요.”

뭐 꼭 그런 건 아니지만 그런 기분이 있어요, 했다. 집을 샀다는 건 좋은 일이지만 하필이면 그런 구더분한 곳이어서 영 재미가 없다는 말투였다. 그들과 비교할 능력이 못 되면서도 괜히 그들과 비교가 되고 그런 까닭에 곤궁 아닌 곤궁을 느낀다는 거다. 집 없이 살 땐 집 한번 가져보는 게 소원이었는데, 내 집이라고 얻어 살아보니 옆집과 비교가 되어 초라해진다는 후배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자꾸 넓은 평수 찾아가는 사람들 마음 이해할 것 같아요.”

후배가 헛웃음을 했다. 그 말에 내 마음도 떨떠름했다.

후배는 쓸데없는 말을 했다며, 속 보인 것 같아 미안하다며, 아니 그딴 생각하는 자신을 더 이해하기가 어렵다며 인사 끝에 전화를 끊었다.

 

 

 

내게도 그런 경험이 있다.

아내에겐 소형의 오래된 승용차 ‘프라이드’가 있었다. 직장이 너무 멀어 차를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직장만 먼 게 아니라 교통편마저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결국 아내는 프라이드를 구입했다. 아내는 그 차로 출퇴근을 했고, 딸아이 학원이며, 집안의 크고 작은 일에 요긴히 쓰며 지냈다. 운전을 두려워한 나는 대중교통 수단을 사랑했다.

20년을 쓰고도 프라이드는 꿋꿋했다. 문짝이 잘 열리지 않거나, 오래된 차종이라 교체 수리가 어려워 그렇지 별 문제가 없었다. 그렇지만 보면 안다고 도색이 노후되어 후줄근했다.

 

 

 

“이제 차 좀 바꾸는 게 어때?”

차도 차지만 사고가 두려워 가끔 아내에게 그런 말을 했다. 그렇지만 솔직한 내 속셈은 남 보기에 좀 창피해서였다. 허물없이 지내는 손위 동서도 나를 보면 ‘차 좀 바꾸어 줘. 우리나라는 차가 곧 그 사람의 부를 상징한다구!’ 그러며 은근히 나를 압박했다. 나도 그런 우리의 풍습을 모르지 않는다.

“이만하면 충분해. 이걸로 내 할 일 다 해내니까.”

나의 종용을 아내는 거절했다.

 

 

 

아내는 나와 달리 타인의 눈을 별로 의식하지 않는다. 그 오래된 소형차로 직장도 잘 다니고, 동창회도 다니고, 그 차로 손수 그린 그림들을 운반하며 당당하게 산다.

“남의 인생도 멋있지만 낡은 프라이드 몰고 다니는 내 인생도 멋지잖아!”

살아보아 알지만 그런 말하는 아내의 속내엔 조금의 거짓도 없다.

아내는 인생에서만큼은 나보다 몇 수 위다. 허세가 없다. 정직하다. 꼭 필요한 것 이상의 것을 탐내지 않는다. 무엇보다 물질의 세속적 가치를 그리 중하게 여기지 않는다.

 

 

 

“남들 보기 좀 그렇잖아?”

그럴 때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이 이 말이다. 아내에 비해 나는 타인의 눈을 의식한다. 타인과 나를 물질적으로 비교하려 한다. 그런 까닭에 후배처럼 나는 늘 나를 작게 평가한다.

대개 사람은 자신의 것보다 능력 이상의 남의 것을 부러워한다. 그러기에 내 인생이 빈곤한 처지가 아님에도 내 이웃과 비교하느라 내가 그만 초라해지는 걸 느낀다. 그것은 내가 내 인생의 가치를 업수이 여기기 때문이다.

 

 

 

잘 나가는 이의 인생만 아름다운 게 아니다. 내 인생도 그 못지않게 소중하다. 그런데 먼저 내 인생을 소중히 여기려면 나를 이끌어온 내 삶의 가치에 대한 신념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내가 좀 적게 가져도 행복할 수 있다.

바람에 흔들리듯 세상일에 휘둘리며 살아온 나는 가끔 아내의 말을 몰래 떠올린다. 남의 인생도 멋있지만 낡은 프라이드 몰고 다니는 내 인생도 멋지다는 말. 그래서 아내는 나보다 적게 가졌으면서도 늘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