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박치고 싶은 사람 없는가
권영상
지금은 말하는 시대다.
그 말을 증거나 하듯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이나 주장을 끝없이 피력한다. 듣는 이가 어떤 관심을 갖는지 여부를 떠나 자기 표현에 주력한다. 어떤 모임이든, 하다못해 몇몇이 하는 등산 모임에 가보아도 그렇다. 이야기에 이야기가 꼬리를 문다. 남자들이라면 주로 정치적 견해 아니면 해외여행, 자신의 친구를 내세워 자신을 과시하는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지금은 남의 말을 들어주는 시대라기보다 자기를 표현하는 시대다. 아니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시대다. 조용한 밤, 피로도 풀고 운동도 할 겸 걷기길에 나서 보면 꼭 핸즈프리로 통화를 하며 걷는 이들을 만난다. 아주 통화할 걸 작정을 하고 나온 이들 같다. 그들은 한 시간씩 걸어야 하는 거리의 길을 쉬지 않고 통화한다.
그런 이들은 실제로 우리 주위에 많다. 공원에 나가보면 장시간 통화하는 이들이 있다. 지하전철에서도 같은 일을 경험한다. 자칫 휴대전화로 통화하는 이 옆자리에 잘못 앉으면 내릴 때까지 통화 소음에 시달릴 때가 많다. 그들 역시 전화 통화를 위해 전철에 오른 사람들처럼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통화한다.
“근데 저렇게 오래도록 들어주는 상대방은 누굴까.”
가끔 그게 궁금할 때가 있다. 저쪽에서 마냥 들어주기만 하는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어떤 일을 하길래 장시간 통화를 들어줄 수 있을까. 직장은 있는 분일까. 아닐까. 통화를 끊지 못하고 들어주기만 하는 그는 지금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그런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그때 문뜩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있다.
‘말 들어주는 앱’이다. 통화하고 싶어하는 이의 말을 들어주는 앱 개발. ‘말 들어주는 앱’을 만든다면 분명 대박일 것 같다. 주변을 의식하지 못하고 통화해야하는 이에게도 어찌 보면 통화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스트레스가 있다. 그런 이에게 마냥 공중예절을 주문하는 것도 예의는 아닐 듯 싶다.
다정한 목소리로 통화 신청자의 말을 들어주는 앱을 개발해 보자. 신청자의 선택에 따라 들어주는 이가 여성이 될 수도 남성이 될 수도 있다. 실제 사람을 쓴다는 건 여러모로 위험하다. 그보다는 맞장구 쳐줄 다양한 말의 매뉴얼을 개발하여 기계음으로 설계하면 개발이 어렵지만은 않을 것 같다.
우리 말 구조의 패턴은 서양과 달리 복잡하지 않다. 목소리의 높낮이, 휴지 시간, 발화 속도, 말하는 이의 감정 상태 등을 잘 파악하여 ‘그래 맞어, 잘 했어, 당근이지, 그래서, 그리고, 그 다음엔, 왜 그랬지? 당신의 마음을 이해해, 그게 무슨 말인지 알겠어, 마음을 잘 추슬러요, 사람의 일이란 게 다 그렇지 뭐, 역지사지란 말도 있잖아. 이불 잘 덮고 자렴, 한잠 푹 자고나면 괜찮을 거야, 너를 믿어, 힘 내.’ 등의 말을 통화의 중간 중간에 살려 넣는다면 통화자의 욕구를 충분히 해소시켜 줄 수 있을 것 같다. 문제는 디테일한 콘텐츠에 있다. 콘텐츠만 잘 개발한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 같다.
지금은 내가 내 욕망을 말하는 시대다. 그리고 스트레스를 피할 수 없는 분노사회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이다. 사회가 계속 스트레스를 주는 한 우리는 계속 뭔가 말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말 들어주는 앱’의 미래는 밝다.
단지, 지하전철 속의, 또는 걷기길에 나와 장시간 통화하는 이들 때문만이 아니다. 스트레스를 받으며 사는 우리 시대 사람들 모두의 건강을 위해서다. 어쩌면 목숨을 버리려는 사람을 극단에서 구해낼 수 있는 일도 ‘말 들어주는 앱’이 할 수 있겠다.
어떤가. 마냥 실현 불가능한 일인가. 아니라면 누구 대박치고 싶은 사람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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