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솔밭 숨은솔의 상처
권영상
그 나무들을 보고 돌아오면 속이 아프다. 아무 배운 것 없는 나무들이지만 나를 울리게 한다. 영화를 누리며 살아온 게 아니라 가난을 떨쳐내지 못하고 산 게 그 나무들이다. 평생 마을의 바람막이로 살았다. 그러느라 바람에 시달렸고, 사람에 시달렸다.
고향 마을의 소나무들이다. 그들의 나이는 어림잡아 100년은 훨씬 넘은 듯하다. 저들 스스로 날려 온 씨앗으로 하나 둘 터를 잡고 산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손에 잡혀와 심어진 나무들이다. 나는 본 적 없지만 그 나무를 형님들이 직접 심으셨다는, 지금은 멀리 떠나신 고향의 아버지 말씀을 나는 기억한다.
고향 마을의 동편은 동해바다다. 동해를 건너온 겨울 해풍은 맵고 고약하다. 마을은 방풍림으로 소나무를 선택했다. 소나무는 그렇게 해 마을의 방풍림으로 심어졌다. 이른바 사람들 손에 의해 심어진 나무들이라 하여 고향 사람들은 그 솔밭을 ‘심은솔밭’이라 했고, 그 소나무들을 ‘심은솔’이라 했다.
심은솔밭의 심은솔은 상처가 많다. 이 땅에 발을 딛고 사는 나무치고 상처 없는 나무가 없을까마는 특히 심은솔밭 심은솔은 그 상처가 아직도 완연하다. 내가 멀리 서울로 돌아와도 잊지 못하는 건 심은솔의 상처가 깊고 크기 때문이다.
심은솔의 상처란 소나무 둥치에 숱하게 그어진 모진 칼자국이다. 일제는 전쟁 말기 항공기 연료 부족을 우리의 산야에 자라는 소나무 송진으로 채우려 했다. 그때 그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을 동원해 우리의 산야에 자라는 소나무를 우리들의 손으로 상처 내게 만들었다. 배운 것이 없는 사람들은 배운 것이 없이 자란 소나무 등에 칼을 댔다.
그때 나무들은 얼마나 아프고, 또 얼마나 슬펐을까. 가난한 땅에 살던 가난한 나무들은 그렇게 밖에 살 수 없었던 이 땅의 무지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손을 놓치지 않고 다 보았다. 대동아 전쟁터로 끌려가는 마을 사내들의 눈물처럼 심은솔밭의 수많은 심은솔들도 살을 베이는 그런 아픔을 겪었다.
그때 그 소나무들의 나이 열다섯 살이거나 스무 살. 아직 젊거나 앳된 목숨들. 빗살무늬 모양으로 송피를 그어 송진을 받아낸 자상이 지금 나이가 되도록 완연히 그대로 있다. 그러고도 나무는 목숨을 버리지 못하고 살아내야 했다.
나무는 참 아프다. 나무가 아픈 것은 그것만이 아니다. 남북이 전쟁을 치룰 때 푸른 탄환 연기를 보았고, 포탄에 쓰러지던 마을사람들을 다 보았다. 이 땅을 사는 나무들 중에 그런 험한 풍경을 모르는 나무들은 없다. 고요히 침묵할 뿐이지 그들이 겪은 고초는 한 짐 분량의 책이 되고도 남고, 한 수레 분량의 근대사가 되고도 남는다.
처음 북에서 총을 앞세우고 그들의 군대가 밀려올 때 마을사람들은 멀리 피란을 갔다. 그러나 1월의 모진 눈 속을 뚫고 그들이 다시 내려올 때는 더 이상 멀리 갈 수 없어 심은솔밭에 목숨을 숨겼다. 세간을 지고 와, 새끼 낳을 암소를 끌고 와, 가족의 손을 잡고 와 숨은 곳이 바로 심은솔밭이었다. 그 후 ‘심은솔밭’은 자연히 ‘숨은솔밭’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숨은솔밭 숨은솔들은 제 숲으로 쫓겨 온 마을을 품에 안고 그들을 탄환으로부터 숨겨주었다.
숨은솔밭의 숨은솔은 그 때의 고충을 안다. 같은 마을사람끼리 좌우로 갈리어, 어제까지 같은 밭에서 쟁기를 들고 일하던 이웃사촌을 해하던 일을 안다. 차마 못할 짓을 하던 광란을, 누군가 잡아당기는 방아쇠에 쫓겨 가던 사내가 껑충 날아올라 피투성이로 떨어져 나뒹굴던 참극을 숨은솔은 안다.
숨은솔밭 숨은솔들은 가난하고 배운 것이 없어도 다 안다. 그만한 고초와 그만한 형극과 그만한 상처를 안고 산 나무들이라면 설명하지 않아도 다 안다. 인간이 꿈꾸는 이념국가가 이 땅 위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허상인지, 속 깊이 감춘 그들 국가의 국기가 더 많이 피에 젖는다 해도 그게 꽃으로 피어나지 못함을 나무들은 살아봐서 안다.
세상에 상처 없는 나무가 없듯 상처 없는 나라도 없다. 그 상처를 고스란히 안은 채 숨은솔은 저리도 청청하게 살고 있다. 저리도 빛나는 푸른 빛을 뿜어내고 있다.
역사를 거듭하며 심은솔은 숨은솔이 되었다. 이제 숨은솔은 그 어떤 이름으로든 시대에 맞게 바뀌어야만 할 것 같다. 심은솔로 다시 돌아가든가 아니면 해풍을 막아주던 ‘바람솔’로 새로이 태어나든가.
소나무에겐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솔향이 있다. 상처를 안고도 솔바람을 노래할 줄 알고, 서늘한 그늘을 내어주거나 때로는 그 누군가를 위해 거친 바람과 싸울 줄 아는 이타심이 있다. 소나무는 설법이 간명한 성자와 같다. 단 한 시간 소나무와 침묵의 교류를 하고나도 절로 몸이 행복해진다.
숭배할 인물이 없는 이 시대에 그 일을 대신하기에 무엇보다 소나무들이 적절하다. 우리가 살아온 이 근대사를 소나무만큼 온몸으로 겪은 이가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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