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법 없이 사시던 분

권영상 2015. 4. 19. 11:54

 

법 없이 사시던 분

권영상

 

 

 

전에 있던 직장에 울보 한 분이 있었지요. 그때 그분의 나이 쉰은 되었을 겁니다. 누구나 그를 보면 그의 인간적인 모습에 금방 빠져들 만큼 온화한 분이었습니다. 굵은 주름살을 한 큼직한 얼굴과 살집이 있는 적당한 키, 그리고 편안한 옷차림.

그와 이야기 하면 속에 맺혔던 응어리가 풀려나듯 후련해집니다. 화술이 좋아서는 아닙니다. 그는 오히려 말주변이 없는 편입니다. 그저 말마디마다 고개를 끄덕여 주거나 그래, 좋지, 옳아, 멋진 생각이야, 나도 미처 못 생각한 거네, 역시! 그런 말이 전부입니다. 이런 짤막한 말로 대화를 하지만 그와 대화를 하고 난 사람들은 모두 그와의 대화가 유익했다고 했습니다.

 

 

 

직장 동료들은 직장에 불만스러운 일이 생기거나, 풀지 못할 가정불화가 생기면 우선 그분을 떠올렸고, 그분을 찾아갔습니다. 그와 술을 놓고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온 사람들은 모두 다음 날이면 얽힌 매듭을 풀고 난 환한 얼굴로 출근을 했습니다. 그분에게 문제를 해결하는 탁월한 능력이 있었느냐 하면 결코 아닙니다. 그렇다고 문제를 해결해줄 만큼 지위가 높은 자리에 있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법 없이 사실, 타고난 분이야.”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분에게도 사랑하는 가족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두 큰 도시에 나가 살았고, 그분만 직장 근처에 집을 얻어 혼자 살았습니다. 주말을 제외하곤 손수 밥을 지어 먹는, 이를테면 주말부부였습니다. 언젠가 그분의 집에 가 보고 나는 놀랐습니다. 이렇다 할 가구는 없었지만 옷은 옷대로, 양말은 양말대로, 뭐든 하나 비뚤어진 것 없이 잘 정리 되어 있었고, 부엌은 부엌대로 정결했습니다.

 

 

그런 그분에게도 흠이 하나 있었습니다.

돈을 쉽게 빌려준다는 점입니다. 언젠가 직장에서 신용을 잃을 대로 잃어버린 한 동료가 그를 찾아가 돈을 빌렸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100여만 원쯤 되는 액수였습니다. 그때 그 액수는 우리들의 두 달 치 월급과 맞먹는 꽤 큰돈이었습니다.

그 소문이 직장에 짜아 하고 돌 즈음 그는 직장을 그만 두었습니다. 이미 다른 곳에서도 많은 빚을 지고 있었습니다.

“누구도 돈 빌려주지 않는다는 걸 모르셨나요? 왜 그러셨대요.”

다들 위로 아닌 위로의 말로 그분을 탓했지요.

그럴 때에도 그분은 오히려 역정을 냈습니다.

“누구한테도 돈 빌릴 데가 없다는 걸 아는데 어떻게 모르는 척할 수 있나.”

그분은 그랬습니다.

그만치 그분은 남의 아픔을, 남의 고민을, 남의 상처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했습니다.

 

 

 

그런 그분에게 언제부턴가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술을 마시면 술자리에서 울기 시작했습니다. 술기운이 돌 만큼 취하면 ‘엄마! 엄마!’ 엄마를 부르며 울었습니다. 쉰 살의 사내가 엄마를 부르며 운다는 걸 한번 상상해 보세요. 그답지 않게 눈물범벅을 하고, 옷매무새를 흐트러뜨리고, 아무나 옆자리에 앉은 이를 껴안고 엉엉 우는 모습을 말이에요. 서너 명이 둘러앉아 술을 마실 때도 그랬지만 전 동료가 다 모이는 회식자리에서도 술만 취하면 두 다리를 뻗고 울거나 쓰러져 울었습니다. 정말이지 그건 너무나 놀라운 충격이었습니다.

 

 

 

그분이 술에 취했다 싶으면 젊은 우리들은 잽싸게 그분을 택시에 태워 댁으로 보내드리곤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빈 집으로 돌아가서도 혼자 밤늦도록 운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나 몰라라 댁으로 보내드리는 것도 도리는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할 수 없이 그분의 엉엉 우는 울음소리를 들으며 술자리를 간신히 끝내야 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분은 우리 직장에서 가장 사랑받는 선배였습니다. 그런 그분이 이제는 골치 아픈 짐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술자리를 가져도 그와 합석하는 일만을 피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함께 자리를 했다 해도 그가 울기 시작하면 하나 둘 슬금슬금 자리를 떴습니다.

“법 없이 사시던 분이 왜 저렇게 되었을까?”

우리들은 그게 몹시 궁금했습니다.

 

 

 

근데 요 며칠 전입니다.

우연히 그때 그 직장에 함께 근무하던 이를 강릉행 고속버스에서 만났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그분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스트레스성 암에 걸려 고생하다가 벌써 오래 전에 돌아가셨다고 했습니다.

스트레스라는 말을 듣고 보니 그분의 울음이 떠올랐습니다. 그때 술을 마시면 그분이 왜 울었는지 알 것도 같았습니다. 그분은 살아오며 주변 사람들의 하소연을 들어준 게 아니라 그들의 아픔을 자신의 몸으로 받아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분을 찾아가 풀어낸 하소연은 모두 그분에게 스트레스로 쌓인 셈이었던 거지요. 그리고 그 아픔을 더 이상 견뎌낼 수 없을 때 울음으로 풀어낸 듯하였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법 없이 살 사람이라고 덕담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덕담이 아니었습니다. 죽음의 덫으로 몰아넣는 일이었습니다.

 

 

 

바다가 바라보이는 동해시의 어느 산언덕 학교가 떠오릅니다. 그때 나는 그분과 함께 그 학교에 근무를 했었습니다. 주말이면 그분도 나처럼 서울행 버스를 타곤 했었습니다. 강 아무개 선생님입니다. 아무리 험한 일을 당해도 화 한번 내지 않던 분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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