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핀 남산길을 찾으러
권영상
오후 6시 30분.
을지로 선술집으로 그를 데려 갔다. 일 년에 한두 번 들르던 황해도집이다. 빈대떡 모둠안주와 막걸리 세 병을 시키고 그와 마주 앉았다. 나의 중학교 제자 K다. K는 내게 국어를 배웠다. 중학교 시절 시 동아리 ‘볍씨’를 만들었을 때 가장 먼저 달려와 참여해준 이가 K다. 그는 그 후 군에 입대하였고 편지 교류로 우리는 다시 만났다. 그는 그림 공부를 하러 외국에 나가서도, 또는 돌아와서도, 결혼을 하여 아이를 낳은 40대가 되어서도 나를 못 잊는 그야말로 절친한 사이가 되고 말았다.
“이제 우리는 인생 친구다.”
술잔이 오가면 나는 그에게 그런 말을 장난삼아 한다. 오래 만나고, 또 오래도록 편지로 서로 속마음을 전하며 살아 그런지 제자와 스승 사이의 ‘인생 친구’라는 게 이런 거구나, 싶을 정도였다.
그와 술 세 병을 마시고 우리는 일어섰다. 남산길 벚꽃을 보러가자는 나의 객기를 그가 얼른 받아주었기 때문이다. 술집을 나섰을 땐 사위가 깜깜한 밤이 되어 있었다. 우리는 오래 마음을 튼 벗처럼, 일상을 훌훌 털어낸 나그네처럼, 휘적휘적 대한극장 앞을 지나 남산한옥마을 방향으로 들어섰다. 어두운 밤 8시, 나는 그를 믿고 그는 나를 믿고 컴컴한 봄밤의 남산길을 찾아 나섰다. 한옥마을 앞 정자를 지나 타임캡슐을 묻었다는 구조물을 지나 안에서 바깥으로 나가는 문을 찾았다.
“곧 남산길이 나올 테지.”
나는 벚꽃 가득 피어있을 소월길을 생각했다. 한 때는 벚꽃을 보러 일부러 남산길을 걸어 퇴근을 하고, 서부역 우체국 앞에서 버스를 타고 남산 벚꽃 길을 오르내리기도 했다. 벚꽃을 사랑해서라기 보다 봄이니까. 봄이라는 시절이 괜히 마음을 달아오르게 하니까 그 봄에 젖어 벚꽃길에서 살았다.
남산길이 나오겠느냐는 내 말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소월길 보다는 장충동으로 넘어가는 남산길이 어디쯤 나올 거라 생각했다. 우리는 우리가 짐작하는 방향의 골목길을 걸어 올랐다. 민가가 나오고 민가의 담장 밖으로 목련 꽃봉우리가 불거져 나오는 봄밤을 걸었다. 달빛 만큼 좋은 목련.
봄꽃은 역시 담장 위에 소담히 피는 골목 꽃이 제격이다. 남들 보기에 좋도록 간격을 딱 맞추어 심어놓은 꽃들보다, 바겐세일에 나온 기성품 같은 가로수 꽃들보다 한 골목 꺾어들면 어둑한 곳에 우두커니 서 있는 목련이거나 살구꽃이거나 허술한 벚꽃이 오히려 수제품 같아서 좋다. 남모르는 길모퉁이에서 뜻밖에 만나보는 고요한 봄꽃일수록 꽃은 좋다.
나와 동행하는 그도 그런 생각인 모양이다. 내가 저만큼 걸어가고 있는데 발길을 떼지 못하고 혼자 서서 길갓집 목련을 바라보고 있다. 나는 그가 올 때를 기다리며 우리가 놓친 이 어둑한 골목길과 전신주들과 높은 담벼락들과 간간히 서 있는 보안등과 어렴풋한 달빛과 뉘 집에선가 들려나오는 텔레비전 소리들과 그리고 밤길을 찾느라 골목을 서성대는 우리들의 발소리....... 그런 정황을 나는 눈여겨보고 있었다. 봄꽃은 얼룩진 일상을 배경으로 제 모습을 드러낼 때 아름답다. 그게 단아함이든, 그게 신비함이든, 그게 청초함이든, 그게 서민의 심정을 닮았든 간에.
길을 찾느라 막다른 길 앞에서 다시 돌아서고, 내리막길을 걸어 내려가다가 다시 담장 길을 끼고 올라가고, 우리는 마치 남산 벚꽃길, 거기에 꽂힌 짐승들처럼 길을 찾아내느라 인현동 가파른 길을 오르락내리락 했다. 그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그와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며, 그의 그림 작업 이야기를 들으며.
밤이 아직 많이 남았으니 사실 우리에겐 아무 서두를 일이 없었다. 남산길은 먼데도 아닌 바로 우리 머리 위에 있다. 소로를 찾는다면 단숨에 올라갈 길을 두고 있었다. 서늘한 밤기운에도 돌아앉지 않고 우리를 맞아주는 목련과 벚꽃이 있는데 애달플 일이 없었다.
“저, 미안하지만 남산길로 올라가는 길을 좀........”
마침 귀가하는 이를 만나 길을 물었다. 이 골목에선 그쪽으로 가는 길이 없다는 거다. 정 가려면 이 길을 내려가 충무로에서 처음부터 다시 남산길 오르라는 거다.
그의 말대로 우리는 또 골목길을 타고 산 비탈길을 내려왔다. 조그마한 한길이 나왔다. 벚꽃 축제 현수막이 걸려있는 길에서 멈추었다. 길 옆 음식점에 들러 빈속을 채웠다.
“성훈아!”
k는 성훈이었다.
숟가락을 들며 마주 앉은 그를 불렀다.
나는 혈색 좋은 그에게 말했다. 오늘은 길을 못 찾았지만 다음에 다시 와 그 길을 찾아보자고. 그때가 언제가 될 지, 그때에도 그 길을 못 찾고 다시 돌아서게 될지, 아니면 그때까지 우리의 관심이 남산길에 가 있게 될지도 모를 그 일을 두고 우리는 그때를 약속했다.
늦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음식점을 나왔다. 가로등 불빛에 활짝 핀 가로수 벚꽃들을 보지만 우리가 어두운 산비탈 골목에서 보던 그 꽃들과는 너무도 달랐다. 도도함도 우아함도 없는 기성품 같은 화사함만 보였다.
그 밤, 그와 길을 찾느라 인현동 골목길을 오르락내리락 하던 일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꽃 귀신에 홀린 봄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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