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포기 세대의 아픔

권영상 2015. 4. 25. 12:58

포기 세대의 아픔

권영상

 

 

 

 

이제 한 주일 뒤면 내 시집이 출판이 된다. 담당 편집자가 이메일로 보내준 최종 교정지를 마지막으로 검토했다. 원고 넘긴지 일 년이다. 이 정도면 그래도 양호하다. 경제가 안 좋다, 안 좋다 하기는 책 출판시장도 마찬가지다. 그러다 보니 원고를 넘기고 출판되기까지 2년을 넘기는 건 보통이다.

교정지를 보내며 한두 마디 한 내 메일 때문에 저녁 늦은 시간에 편집자한테서 전화가 왔다. 아직 회사라 했다. 좀 늦어도 일을 마치고 퇴근하겠다는 편집자는 나이 서른을 넘긴 미혼이다. 이야기 끝에 얼른 결혼을 하라고, 이 시간에 집에 돌아가 자신의 가족들과 오붓하게 저녁 식사를 하는 기쁨을 맛보라고 농 삼아 말했다.

 

 


“작가님, 저 3포 세대예요.”

그가 허탈하게 웃었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3포 세대, 자신이 그 3포 세대라는 거다. 달고 경쾌한 웃음이 아니었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도 회사에 남아있는 자신을 한심하게 여기는 웃음이었다. 그 세 가지를 자의적으로 포기한 홀가분한 웃음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체념한 속내가 아프게 묻어있었다. 누군들 왜 연애가 싫고, 결혼이 싫고, 자식 낳는 일이 싫겠는가. 아무리 그 일인 번다하고, 그 바탕에 헌신적 노력이 필요하다 해도 결혼하고 출산하는 일은 본능이다. 그런데 그 일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노릇이라면 더욱 서글프다.

 

 

 

“5포 세대는 또 어떤 세대인지 아세요?”

그가 어이없는 현실을 체념이라도 한 듯 내게 물었다. 3포라는 말은 들어 알았지만 5포 세대란 말은 처음이었다. 내가 처음 편집자에게 결혼을 해 행복을 맛보라고 한 건 순전히 나이 먹은 이로서의 권유였다. 그런데 이야기가 이쯤 되고 보니 그런 말을 한 내가 솔직히 미안해졌다. 이런 아픔을 남겨준 나쁜 세대 같아 내 기분이 뻘쭘해졌다.

대답을 못하는 내게 그가 주문을 외듯 말했다.

 

 

 

“연애, 결혼, 출산. 거기다가 인간관계와 내 집 마련하기를 포기한 세대요. 놀라셨지요?”

나는 놀랐다.

내가 아는 친구의 자녀 중에 인간관계를 포기한 아들이 있다. 친구의 말에 의하면 자기 아들은 벌써 7년 동안 집 바깥을 나가지 않고 있다고 했다. 대학 때 사귀던 친구는 물론 오랫동안 만나오던 초등학교 친구조차 안 만난 지 오래 됐단다. 하루 종일 제 방에 박혀 컴퓨터와 산다는 거다. 용돈을 주어 나가 영화도 보고, 바람도 쐬고 오라 해도 싫다는 거다. 간혹 늦은 밤 게임방에 한 번씩 다녀오는 게 전부란다. 대학을 졸업하고 딱 석 달 직장에 다닌 게 유일한 사회생활이라고 했다. 그런 그의 아들에게 있어 내 집 마련은 넘볼 수 없는 꿈이다. 내 집 마련하기를 포기했다는 건 영영 부모 곁을 떠나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러고 보면 남의 일 같지 않게 친구의 일이 안타깝다.

 

 

 

편집자는 ‘9포 세대’도 있다는 말을 남기고는 전화를 끊었다.

인터넷에 ‘9포 세대’를 검색했다. 우리가 물려준 세상이란 게 너무나 한심했기 때문이다. 9포 세대란 연애, 결혼, 출산, 인간관계, 내 집 마련과 거기에다 경제활동과 희망을 포기하고, 자신의 건강과 외모까지 포기한 세대라는 대답이 떠돌았다. 나는 이런 말들이 할 일 없는 누군가가 그저 재미삼아 만들어낸 자조 섞인 우스갯소리이기를 바라며 컴퓨터 앞을 떠났다.

컴퓨터 앞을 떠났는데도 괜히 그 3포니, 9포니 하는 말이 자꾸 떠올랐다. 취업을 못해, 그러니까 돈을 벌지 못해 사람으로서 가져야할 욕구와 욕망과 희망마저 버려야하는 젊은이들의 현실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오늘자 모 일간지에 경제가 나빠 젊은이들이 결혼을 안 한다는 기사가 났다. 경제가 나빠 결혼을 미룬다거나 결혼 연령이 늦어진다는 말은 있어왔지만 포기한다는 노골적인 기사는 처음이다. 젊은이들이 이 포기 시대의 암울한 늪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기를 자식 가진 아버지로서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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