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오는 밤
권영상
강릉에서 마련한 감자씨를 차에 싣고 오늘 안성에 내려왔습니다. 좀 늦은 감이 있지만 내려오는 대로 감자씨를 심었습니다. 감자를 심고 나니 밭이 밭다워지는 걸 느낍니다. 밭의 주인은 지역마다 다르겠지만 기본적으로 보리와 감자지요. 이제 보리는 씨앗 구하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보리밭 테마 사업을 하는 지자체에 손을 벌리지 않는 한 구할 수 없지요. 그러나 감자는 고향 강릉에 내려가면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습니다.
지난해는 처음 짓는 농사라 감자 거름을 못 했습니다. 그게 늘 아쉬웠는데 올해는 지난해에 준비한 풀거름과 마른 풀을 태운 재거름, 그리고 유기농 거름을 듬뿍했습니다. 감자씨를 한 가마 정도 심었냐구요? 미안합니다. 겨우 8미터짜리 다섯 이랑을 심었습니다. 그래놓고 대농을 하는 것처럼 감자타령을 해 미안합니다. 그저 예전, 아버지 농사하시던 일을 흉내 내는 수준이지요.
“이젠 비 좀 와도 좋겠다.”
수돗물에 괭이를 씻으며 하늘을 쳐다봤습니다.
내 마음의 소리를 하늘이 엿들은 건가요. 저녁부터 비가 내립니다. 봄비지요. 봄비 내리는 소리가 그렇게 좋을 수 없습니다. 사느라 상처받은 마음을 도닥도닥 어루만져 주듯, 내 안의 말소리에 귀 기울여주듯 걸음걸이가 조용조용합니다. 속살거리며 마당을 지나가는 비의 발소리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비는 때로 창을 들이치고, 때로 마당 마른 잔디를 뒤적거립니다.
나는 얼른 일어났습니다. 물뿌리개를 찾아 들었습니다. 꽃씨 온상이 생각났지요. 봄비가 와도 온상 속에 있는 꽃씨들은 봄비 세례를 받지 못합니다. 낮에 한번 주었지만 비를 흠뻑 맞는 들판의 풀씨를 생각하고 또 한 번 주었습니다.
꽃씨는 지난 목요일에 심었지요. 그러고 일 주일 만에 내려왔으니 목마르지요. 그런데도 백일홍, 해바라기, 접시꽃, 호박이 떡잎을 내밀었고, 프렌치 마리골드도 일부 올라왔습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꽃씨도 고온에서 발아하는 게 있고, 저온에서 발아하는 게 따로 있다네요. 보통은 일주일이나 이 주일쯤 되면 발아가 되는데 몇 달 또는 일 년이 지나야 발아하는 씨앗도 있답니다. 그러니 암만 봄에 씨앗을 뿌려도 추운 겨울을 다시 겪지 않으면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씨앗이 있답니다. 그게 작약과 창포랍니다.
민들레 씨앗은 심기 전에 일 주일간 냉동실에 넣었다 꺼내며 이제 겨울잠 다 잤다, 해줘야 싹이 난다지요. 허브 종류나 야생화 씨앗들이 그 경우랍니다.
이번의 경험으로 보면 백일홍, 해바라기, 접시꽃, 호박은 발아 기간이 짧고, 고추, 분꽃, 봉숭아, 일일초, 가지 등은 그들에 비해 발아기간이 길고, 채소류는 6,7일이면 나온다는 걸 알았습니다. 덧붙일 건 가지 오이 토마토는 발아환경을 어둡게 해주어야 하는데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컴컴하도록 깊게 묻어야 된다는 거지요.
저녁을 먹고 방에 앉으려니 창밖 빗소리가 다시 소곤소곤 들립니다.
빗소리를 들으며 책도 읽고, 글도 쓰고, 그러다가 컴퓨터를 켜고 ‘유튜브’를 열었습니다. 안성에 오면 꼭 듣는 음악이 있습니다. 오늘처럼 비 오는 밤을 견뎌내는데는 음악만한 것이 없을 테지요. 베토벤의 <전원 교향곡>은 꼭 듣는 편입니다. 약동적입니다. 브루흐의 <스코틀랜드 환상곡>, 드보르작의 <신세계>,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세헤라자데>, 스트라빈스키의 <불새>, 멘델스존의 <핑갈의 동굴>, 유키 구라모토의 <로망스> 그리고 폴모리아 악단의 가벼운 음악들과 조영남의 <모란동백>, 송창식의 <나의 기타 이야기>.
안성에 내려와 이것저것 들어보면서 만든 나의 리스트입니다. 모두 14곡인데 잊을까봐 엽서에 적어 책상 위에 세워두었습니다. 순하고 우리 귀에 친근한 곡들입니다. 곡을 클릭해 놓고 발톱도 깎고, 방도 훔치고, 집에서 가져온 견과류도 먹고 그거면 좋지요.
감자도 심고, 상추 온상도 하고, 꽃씨 온상도 따로따로 해놓았으니 봄일을 다 해놓은 듯 마음이 뿌듯합니다. 음악을 들어도 게으른 것 같지 않아 좋고, 젊은 시절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어 좋습니다.
아내가 있는 서울에서 가끔 음악을 듣는데 그때마다 별로 좋아하는 느낌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한가해 보이는 모양입니다. 아니 그 한가함을 혼자 즐기는 것처럼 보여 좀은 샘을 내는 것 같았습니다. ‘누군 뭐 음악 들을 줄 몰라 안 듣나’ 그런 눈치였지요. 그러나 지금은 눈치 볼 일이 없으니 좋습니다.
창문을 열고 깜깜한 어둠을 내다보다가 그만 봄비에 이끌려 밖으로 나갔습니다. 머리 위며 어깨 위에 내려앉는 가벼운 비의 손길이 싫지 않습니다. 다정한 동무의 손처럼 부드럽습니다. 나는 비를 맞으며 아무 달라질 것도 없는 감자밭 이랑을 괜히 한번 들여다보고, 온상의 비닐을 한번 툭 쳐보고, 꽃을 피우고 서 있는 매화나무 잔등을 툭 건드려 봅니다. 모두 나의 말벗들입니다.
창문 밖으로 쏟아지는 불빛에 창밖 모란이 새잎을 피우고 있습니다. 그 옆엔 지난주에 메이플 한 그루를 심었고, 그 곁엔 달리아 뿌리를 묻어두었습니다. 어느 여름 동해안 작은 기차 간이역에서 빨갛게 피던 달리아 꽃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이들 모두 촉촉이 봄비를 맞고 있습니다. 발끝을 세워 불 켜진 방을 들여다봅니다. 유키구라모토의 피아노 소리가 비 내리는 창밖으로 빗방울처럼 날아옵니다.
방에 들어와 손거울 속의 나를 봅니다.
보석비를 맞은 듯 머리칼이 반짝입니다. 비를 털고 방바닥에 앉습니다. 저녁에 켜놓은 보일러 기운이 아직 그대로입니다. 다리를 길게 뻗고 눕습니다. 감자를 심느라 괭이질을 너무 힘들게 했나 봅니다. 온몸이 뻐근합니다.
불을 끄고 눈을 감습니다. 이 비가 그치면 내일은 눈부신 아침을 맞을 수 있겠지요. 내일은 또 내일이어서 새로운 내일이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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